1989년 광주광역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강진읍 서성리에 사는 김현장 집안에서 3대째 사용해오던 것을 1971년에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1920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923년에 완성시킨 것이라 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중외공원내의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으며, 크기는 길이 312㎝, 너비 132㎝, 높이 220㎝이다. 이 상여는 전통적인 상여와는 달리 2층 목조기와집 형태로 되어 있는데 지붕은 우진각형태이며 벽체는 모두 문짝으로 되었다.
윗부분에는 국화문, 아랫부분에는 격자문을 조각하였으며 문짝위에는 수술을 돌렸다. 2층과 1층 사이에는 운각을 돌렸는데 모두 30개의 졸봉판과 소용판을 이용하여 고정시켰다. 운각의 네 모서리에는 모두 8개의 대봉판을 달아 전통상여가 보통 4개의 대봉판만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호화로움을 더하고 있다.
운각밑에는 붉은색 공단으로 된 보장을 겹으로 돌린 후 부전을 달았으며 보장위에는 수술을 돌렸다. 보장의 아랫부분은 나무로 난간을 만들었으며 칸살위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상여 전후에 각 1개씩의 용두판이 있는데 한쪽은 청룡을, 다른 한쪽은 황룡을 새겨 남녀에 관계없이 이 상여를 쓸 수 있게 하였다. 맨 위 양장밑으로는 청사초롱을 달았다. 단강은 9개로 되어 한 개에 좌우 두 줄씩 모두 36명의 상두꾼이 매도록 된 대형의 상여이다.
이 같이 화려한 상여는 개화기 이후 서민층에 대한 의례적 규제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부유층의 문화행태의 하나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