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치내 ()

목차
고대사
제도
후삼국시대 태봉(泰封)의 관직.
목차
정의
후삼국시대 태봉(泰封)의 관직.
내용

최고중앙관부인 광평성(廣評省)의 장관직이다. 궁예(弓裔)가 904년(효공왕 8)에 국호를 마진(摩震), 연호를 무태(武泰)라 고치면서 관제를 정비할 때 광평성을 설치하고, 그 장관을 광치내라 하여 백관을 총괄하게 함으로써 그 지위가 고려시대의 시중(侍中)과 같은 관직이 되었다. 광치내 아래에는 시랑(侍郎)격인 서사(徐事)와 원외랑(員外郎)격인 외서(外書)가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집필자
김동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