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삼익(裵三益: 1534~1588)의 본관은 흥해(興海)이며,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연재(臨淵齋)이다. 풍기군수, 양양부사,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1855년(철종 6) 저자의 9세손 배한주(裵翰周) 등이 편집 ·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권1·2에 시 247수, 권3은 시 114수, 소(疏) 1편, 계사(啓辭) 6편, 정문(呈文) 2편, 권4에 서(書) 20편, 명(銘) 1편, 전(箋) 4편, 축제문 3편, 묘갈명 2편, 묘지 1편, 조천록(朝天錄) 1편, 권5·6에 부록으로 연보 · 선묘어찰(宣廟御札) · 제황해도관찰사유지(除黃海道觀察使諭旨) · 교서, 조천별장(朝天別章) 17편, 사제문(賜祭文) · 제문 10편, 가장 · 신도비명 · 묘지명 · 계문제자록(溪門諸子錄) · 의청추록광국훈계(擬請追錄光國勳啓)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치명은 서문에서 저자의 문에 대해 ‘평담간소(平淡簡素)’하다고 평한 바 있는데, 이는 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성팔영(漢城八詠)」은 목멱산의 봉화, 청정한 소나무, 금원(禁苑)에서 들리는 새벽 종소리 등 저자가 당시 한양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가지를 선정하여 시로 읊은 것이다. 「시무십조소(時務十條疏)」에서는 신하가 임금에게 정책을 건의하는 자세와 임금이 신하의 정책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대해 서술하고, 정책 시행의 요목을 10조목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계(啓) 가운데 「논납속편의계(論納粟便宜啓)」는 당시 조세 부과의 원칙과 시행 과정상의 실용성을 논의한 글이다. 「청금동성통혼계(請禁同姓通婚啓)」는 동성끼리의 혼인이 점차 늘어나는 경향을 우려하여 동성혼을 엄격히 금할 것을 청한 글이다. 그 밖에 해운이 교통에 편리하므로 이를 장려해야 한다는 「논해운편의계(論海運便宜啓)」 등이 있다.
서는 김성일(金誠一), 권호문(權好文), 김부륜(金富倫) 등 지인들과의 문안 편지이며, 아들 배용길(裵龍吉)에게 보낸 것에는 학업에 매진하기를 당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조천록」은 1587년(선조 20)에 사은사(謝恩使)로 6개월 동안 명나라에 다녀온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퇴계학파 문인으로서 평담간소한 문풍의 문인으로 평가 받으며 「한성팔영」과 「시무십조소」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