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병산서원 ( )

안동 병산서원 전경
안동 병산서원 전경
유적
국가유산
1605년,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설립한 서원.
이칭
이칭
풍악서당(豊岳書堂), 병산서당(屛山書堂)
유적
건립 시기
1605년
관련 인물
류성용|류진
면적
27,251㎡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8년 03월 31일 지정)
소재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안동 병산서원은 1605년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악서당이었으며, 유성룡의 건의로 병산으로 옮겨 지으며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1605년 병산서당을 중건하고 1614년 유성룡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서원으로의 위상을 갖추었다. 1863년 사액되었고, 서원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의
1605년,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설립한 서원.
건립 경위

병산서원의 전신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은 1563년(명종 18) 건립되었으며 생원 권경전(權景絟) 등의 상소로 학전(學田)이 내려졌다. 그 후 풍악서당이 길가에 있어서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유성룡의 권고로 병산으로 이건하고 병산서당이라 하였다. 1579년(선조 12) 7월에는 권호문(權好文)이 유성룡의 요청으로 병산서당에서 강회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후 풍산지역 사림들이 주도하여 1605년(선조 38) 병산서당을 중건하면서 서원으로 명명하였다. 당시 강당과 재우(齋宇)만 있었는데 1607년(선조 40) 유성룡이 사망하자 정경세(鄭經世)를 비롯한 안담수(安聃壽), 김윤사(金允思) · 김윤안(金允安) 형제 등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사우 건립이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서당 뒤편에 1610년(광해군 2) 8월부터 존덕사(尊德祠) 건립을 시작하여 1614년(광해군 6) 4월 5일에 위패를 봉안함으로써 서원으로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1620년(광해군 12)에는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李滉)을 제향한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유성룡의 위패를 옮겨 함께 제향했다. 병산서원에서는 1629년(인조 9) 3월에 별도로 유성룡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봉안하면서 그의 셋째 아들 유진(柳袗)을 종향(從享)하였다. 1800년(정조 24) 정광익(鄭光翊)의 사액 청원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청액을 요청한 결과 1863년(철종 14) ‘병산(屛山)’이라고 사액(賜額)되었으며, 1868년(고종 5)과 1871년(고종 8)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 사우 중의 하나이다.

활동

병산서원은 정치적으로 17세기 영남지역 공론 형성과 유소(儒疏)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또한 풍악서당 이래로 강학 전통을 유지하며, 장서의 수집과 관리, 제향인의 문집과 저서를 출판하면서 교육 · 문화사적 측면도 강화해갔다. 1633년(인조 11) 『서애선생문집』을 처음 간행한 이래로, 1647년(인조 25) 『징비록(懲毖錄)』, 1702년(숙종 28) 『서애선생연보』를 출판하고 현재까지 책판을 보관해왔다. 이들 책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 중이며, 2015년 세계기록유산 ‘한국의 유교책판(儒敎冊版)[Confucian Printing Woodblocks in Korea]’에 포함되어 등재되었다.

병산서원은 장서의 수집과 관리에도 철저했는데 현재까지 국보인 『징비록』을 비롯한 1,000여 종, 3,000여 책의 고서와 5,000여 건의 고문서들이 전승되고 있다. 이들 장서와 관련 문서들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 중이다. 병산서원은 교육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8세기 말에는 전국적으로 서원의 교육활동이 약화되고 있었으나 병산서원에서는 거재(居齋), 통독(通讀), 고강(考講) 등을 통해 서원 유생들의 교육을 강화하였다. 이런 활동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서원 재산으로 병산교육재단(屛山敎育財團)을 설립하여 현재의 풍산중고등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 특징

경내 건물로는 존덕사 · 입교당(立敎堂) · 신문(神門) · 전사청(典祀廳) · 장판각(藏板閣)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만대루(晩對樓) · 복례문(復禮門) ·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묘우(廟宇)인 존덕사에는 유성룡을 주벽(主壁)으로 유진의 위패가 종향되어 있다. 존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기와집에 처마는 겹처마이며, 특히 기단 앞 양측 8각 석주 위에는 반원구의 돌을 얹어놓은 대석(臺石)이 있는데, 이는 자정에 제사를 지낼 때 관솔불을 켜놓는 자리이다. 향사는 매년 3월과 9월 중정(中丁)에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강당인 입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에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가구(架構)는 5량(樑)이다. 신문은 향사(享祀)시 제관(祭官)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며, 전사청은 향사 시 제수를 장만하여 두는 곳이다. 장판각은 민도리집 계통으로 되어 있으며, 책판 및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민도리집으로 되어있으며, 유생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문루(門樓)인 만대루는 향사나 서원의 행사시, 고자(庫子)가 개회를 알리는 개좌(開坐)와 폐회를 알리는 파좌(罷坐)를 외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기와집에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2020년 12월 2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는 물길을 끌어 만든 천원지방(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병산서원 전역은 1978년 3월 3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의 부속 건물로 등재되었다. 2019년 7월 6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에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동리선생연보(東籬先生年譜)』
『송암선생연보(松巖先生年譜)』
『전고대방(典故大方)』
『태학지(太學誌)』
『서원등록(書院謄錄)』

단행본

『내고장 전통가꾸기』(안동군, 1985)
『서원총람』(안동군, 1978)
『경북향토자료지』(경상북도 교육위원회, 1972)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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