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김자순(金自順)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박(金博)이며, 어머니는 이의(李漪)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 휘하에서 형 김윤명(金允明)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04년 생원으로 소를 올려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청하였으나, 선조가 이언적(李彦迪)의 사적에 미심쩍음이 많다고 하여 부당하다는 전교를 내렸다.
1612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대구부사·대사간을 역임하였다. 특히 대구부사로 있을 때, 백성을 관대하게 다스리고 권세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정온(鄭薀)이 영창대군 피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제주로 유배될 때에는 시를 지어 그를 위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