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안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구부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동리(東籬)
  • 이정(而靜)
인물/전통 인물
  • 본관순천(順天)
  • 사망 연도1620년(광해군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
  • 출생 연도1562년(명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구부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김자순(金自順)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박(金博)이며, 어머니는 이의(李漪)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 휘하에서 형 김윤명(金允明)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04년 생원으로 소를 올려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청하였으나, 선조가 이언적(李彦迪)의 사적에 미심쩍음이 많다고 하여 부당하다는 전교를 내렸다.

1612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대구부사·대사간을 역임하였다. 특히 대구부사로 있을 때, 백성을 관대하게 다스리고 권세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정온(鄭薀)이 영창대군 피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제주로 유배될 때에는 시를 지어 그를 위문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안동읍지(安東邑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