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옥산서원 ( )

경주 옥산서원 일원
경주 옥산서원 일원
유적
국가유산
157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창건한 서원.
이칭
약칭
옥원(玉院)
유적
건립 시기
1572년
관련 인물
이언적|이제민|이전인
면적
95,681㎡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옥산리)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옥산서원(慶州 玉山書院)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7년 03월 08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옥산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주 옥산서원은 157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창건한 서원이다. 1573년 사액되었으며, 수차례 치제와 서적이 하사되었다. 경주를 대표하는 서원에서 18세기 말 이래로 영남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하였다.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하였으며, 건립 이래로 유지해온 건물과 소장자료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의 부속건물로 지정되었고,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에 포함된 9개 서원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의
1572년,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창건한 서원.
건립 및 변천

1571년(선조 4) 경주부윤 이제민이 부임한 후 향인들이 공의로 이언적의 학문과 행의를 기리기 위한 서원 건립을 청원하였다. 이에 이언적이 유식하며 수학했던 화개산 아래의 현재 위치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1572년(선조 5) 2월부터 8월까지 경주부윤 이제민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사우와 강당, 동 · 서재 등 40여 칸의 건물을 지었다.

1573년(선조 6) 2월에 서악서원(西岳書院) 별묘(別廟)에 있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하고, 12월에 경상감사 김계휘의 청원으로 ‘옥산(玉山)’으로 사액(賜額) 되었다. 사액판은 이듬해인 1574년(선조 7) 2월에 내려졌다. 건립 이래로 총 5번의 치제(致祭)와 8번의 서적 하사(下賜)가 있었다. 이러한 국왕의 관심 아래 서원훼철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치되었다.

건물 구성과 특징

옥산서원 공간은 무변루(無邊樓)가 중심이 되는 유식(遊息)공간, 강당이 중심이 되는 강학(講學)공간, 사당이 중심이 되는 제향(祭享)공간 및 부속 건물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각 건물들은 전면에 강학공간을, 후면에 제향공간을 형성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정문에서 차례로 문루, 강당, 사당의 건물이 일직선상에 놓여 중심축을 이루고, 각 공간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반이 점점 높아지는 형태이다.

경내의 건물 명칭은 모두 제향자인 이언적의 유덕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그의 사상이 담겨 있다. 서원의 정문이자, 외삼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는데 이곳을 건너면 문루인 무변루가 있다. 역락문은 『논어』의 「학이(學而)」에 나오는 말로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언적의 학문과 도덕을 찬양하고 학문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에 2층으로 이루어진 누각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그 양측은 각각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이며, 그 밖으로 좌우의 각 1칸에는 보첨(補添) 형식으로 누마루가 조성되어 있다. 무변루 아래층의 가운데에는 문을 달았고, 양측에는 온돌방의 구들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한국 서원에서 루(樓) 양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본래 무변루는 납청루(納淸樓)였는데, 노수신(盧守愼)이 바꾸었다. 무변은 주돈이(周敦頤)의 ‘풍월무변(風月無邊)’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원 밖 계곡과 산을 한눈에 들어오게 하여 그 경계를 없애는 곳임을 의미한다.

무변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마당에 이르고, 정면에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 있다. 구인당의 정면 대청의 좌측에는 양진재(兩進齋), 우측에는 해립재(偕立齋)가 있다. 강당명은 이언적의 저술인 『구인록(求仁錄)』에서 따온 것으로 성현의 학문은 오로지 인(仁)을 구(求)하는 데 있다는 이언적의 핵심 사상을 의미한다. 현재의 구인당은 1839년(헌종 5)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것이다. 당시 추계 향사를 맞이하여 희생(犧牲)과 제수를 옮기기 위하여 건축자재들을 피하여 강당과 내삼문 사이에 사다리를 걸치고 이동하였는데 그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장이 거주할 수 있는 방과 강의를 위한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 협실인 양진재는 명(明)과 성(成)을 갖추어 전진함을 말하는 것으로 명은 도덕을 밝히는 것으로 곧 격물치지(格物致知)한다는 뜻이며, 성은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양진재는 원장과 서원을 내방한 귀빈에게 제공되었다. 해립재는 경건한 마음과 신의로서 사물에 대처한다는 ‘경의해립(敬義偕立)’에서 취한 것이다.

구인당 앞의 마당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 민구재(敏求齋)와 서재 암수재(闇修齋)가 있다. 두 건물 모두 맞배지붕으로 강당의 기단보다 낮은 단위에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2칸의 대청과 3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구재는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공자가 스스로를 가르켜 “나는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서 배운 사람[好古敏以求之]”이라고 했던 글에서 따온 것이고, 암수재는 주자가 스스로의 학문에 대하여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나날이 새롭고 밝게 학문을 펼쳐 나간다[闇然自修]”고 한 문장에서 취한 것이다.

구인당 뒤편의 높은 둔덕에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체인묘(體仁廟)와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체인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이언적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올리고,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며 제품(祭品)은 7변(籩) 7두(豆)이다. ‘체인’은 어질고 착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의미로서 성리학의 중요한 사상가운데 하나이자 이언적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전사청은 체인묘의 좌측에 위치하며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경내에는 이언적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운 신도비각(神道碑閣)이 있으며, 체인묘의 좌측 담장 옆에는 어서각(御書閣)으로도 불렸던 경각(經閣)이 있다. 경각의 좌측 담장 너머에는 1835년 건립하였던 문집판각(文集板閣)이 있다.

서원 경내의 건물인 체인묘, 구인당, 양진재, 해립재, 무변루, 역락문은 영의정 노수신이 명명하고, 현판은 한호(韓濩)가 썼다. 동서재인 민구재와 암수재는 대사성 허엽(許曄)이 명명하고, 현판은 승지 배대유(裵大維)가 썼다. 이산해(李山海)가 썼던 옥산서원 사액판은 화재로 소실되면서 1839년에 다시 모각(模刻)하여 강당 내부에 걸었다. 현재 걸려있는 사액판은 1839년에 다시 받은 것으로서 김정희(金正喜)가 썼다.

유물로는 2004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조사 당시 고서(古書)는 943종 3,977책이었는데, 이는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서원문고로 평가된다. 옥산서원에는 서원 건립 당시부터 감영, 경주부, 문중, 개인의 기부와 조정에서 내려준 내사본(內賜本), 자체 구입 및 간행한 서적들이 다수 남아 있다. 특히 1577년(선조 10)에 내사된 『주자대전』 95책과 『주자어류(朱子語類)』 75책은 완질(完帙)이 전해지는데, 이는 안동 도산서원과 경주 옥산서원에서만 확인된다. 옥산서원에 현재 남아 있는 책판은 총 19종 1,121판으로, 대부분 제향자인 이언적의 문집과 저서를 판각한 것이다.

아울러 서원 운영과 향촌사회의 구체적 실상을 보여주는 고문서(古文書)류는 1,156건이 남아 있다. 이들 자료 가운데 2018년 2월 22일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 완본 9책과 1975년 5월 1일 보물로 지정된 이언적 수고본(手稿本) 『속대학혹문』이 있다. 『복제개혁반대만인소』는 2018년 5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 · 태평양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들 유물은 1972년 후손들이 청분각(淸芬閣)을 건립하여 보관해왔는데, 2010년에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현대식 장서각인 유물전시관을 신축하여 보관하고 있다.

옥산서원 전역은 1967년 3월 8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에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으로 등재된 9개 서원 중 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조두록(俎豆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동경지(東京誌)』
『교남지(嶠南誌)』

단행본

『옥산서원(玉山書院)』(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8)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경북향토자료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논문

이병훈,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운영과 역할」(영남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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