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회숙(晦叔), 호는 석계(石溪). 영해(寧海) 출신. 현감 이함(李涵)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이현일(李玄逸)의 아버지이다.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거하였다.
학행으로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1640년(인조 18)에는 영양의 석보(石保), 1653년(효종 4)에는 영양의 수비(首比), 1672년(현종 13)에는 안동 도솔원(兜率院)으로 옮겨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시문에 능하고 초서도 잘 썼으며, 특히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에게 이학(理學)을 전수받아 다시 아들 이휘일(李徽逸)·이현일에게 전하여줌으로써 주리학(主理學)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김령(金坽)·조경(趙絅)과 교분이 깊었다. 저서로는 『석계집(石溪集)』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