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책. 목판본. 1780년(정조 4) 전후 그의 현손인 춘보(春溥)·택중(澤仲) 등이 유고를 모아 편집한 것을 1811년(순조 11) 후손인 종해(宗楷)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광정(李光靖)의 서문과 권말에 김굉(金㙆)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최근에 영인, 간행된 『서간세고(西澗世稿)』에도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 287수, 권3은 부(賦) 2편, 소 2편, 서(書) 6편, 잡저 2편, 서(序) 2편, 기 1편, 발 2편, 명 1편, 찬(贊) 2편, 표 1편, 전(箋) 2편, 상량문 1편, 제문 12편, 권4는 묘갈명 4편, 묘지명 2편, 권5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만사 19수, 제문 4편, 낙고초당창수시집서(洛皐草堂唱酬詩集序)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가운데 「화좌태충초은(和左太冲招隱)」·「화곽경순유선(和郭景純遊仙)」·「소상팔경(瀟湘八景)」 등은 세상을 한탄하며 영욕의 허무함과 은둔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도중영간송(道中詠澗松)」과 「지족음(知足吟)」도 때를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고 회한의 정을 담은 내용으로, 이런 시들은 당시의 시대상과 당쟁으로 소외되었던 그의 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부의 「감이모(感二毛)」·「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도 역시 조정에서 포부를 펴지 못한 아쉬운 심정과 은둔생활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읊은 것이다.
소의 「청물허이신문묘종사소(請勿許二臣文廟從祀疏)」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배향을 반대한 내용으로 주목된다. 이이에 대해서는 한때 불문(佛門)에 들어간 일을 들어 반대론을 펴고 있다.
잡저의 「용량설(容量說)」에서는 성인과 군자, 대인과 소인 등을 설명하고 있어 인물론에 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