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2책. 목활자본. 1951년경 그의 손자인 종가(種嘉)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민병승(閔丙承)의 서문과 권말에 종가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는 부 2편, 시 55수, 권3은 소 1편, 봉사(封事) 1편, 권4는 서(書) 8편, 서(序) 5편, 기 6편, 설 1편, 통문(通文) 1편, 권5는 권자문(勸資文) 1편, 격문(檄文) 1편, 제문 1편, 혼서(婚書) 1편, 시문(時文) 4편, 행장 3편, 권6은 부록으로 추정기문(趨庭記聞)·가장(家狀)·행장·묘갈명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는 향시(鄕試)의 제목인 「영군국거효렴일인부(令郡國擧孝廉一人賦)」와 성균관시(成均館試)의 제목인 「노련특고묘부(魯連特高妙賦)」가 있다. 시는 대부분 자연을 은거생활에 흡수 표현한 서정시가 많으며, 「겸산유거술회(兼山幽居述懷)」·「유거잡영(幽居雜詠)」이 있다.
「갑진논시폐소(甲辰論時弊疏)」는 서양문물, 특히 의복제도의 수용과 너무 급진적인 개혁을 반대하고, 또 국정전반에 대한 폐단을 열거하여 반박하였다. 「을사봉사(乙巳封事)」는 을사조약의 취소와 오적신(五賊臣)의 참수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서(序) 중 「백일동의록서(百一同義錄序)」는 1894년(고종 31)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을 방어하는 향토방위조직명부의 서문이며, 기 중 「청학동일기(靑鶴洞日記)」는 지리산에 있다는 청학동을 두루 돌아보고 그 위치를 밝힌 것이다.
「팔로유생청복서원설소청통문(八路儒生請復書院設疏廳通文)」은 훼철된 서원을 복원할 것을 주장한 내용으로, 8도의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격문의 「유동비문(諭東匪文)」은 동학운동 때 소모영(召募營)을 대신하여 지은 격문으로, 동학군을 진압하자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