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월성(月城). 호는 문암(文巖). 아버지는 손진수(孫晉洙). 생모는 여강이씨(驪江李氏) 이능균(李能勻)의 딸, 계모는 여강이씨(驪江李氏) 이능수(李能秀)의 딸이다.
경주 금호리(琴湖里)에서 태어나 5세에 할아버지 손최수(孫最秀)에게 처음으로 수학하였다.
이병호(李炳鎬)에게 『효경(孝經)』을 배웠으며 이만규(李晩煃)에게 『시경』을 배웠다. 1914년에 다시 장석영(張錫英)의 문인이 되어 운도재(雲陶齋)에서 수업하였다. 이 밖에 이중업(李中業)·곽종석(郭鍾錫) 등 우국지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
1917년 작은 아버지 손진형(孫晉衡)이 독립운동을 한 죄로 체포되어 공주(公州)에 수감되자 그 뒷바라지를 했지만 다시 울릉도로 이송되었다. 1919년 이중업·곽종석·장석영 등이 김창숙(金昌淑)을 유림 대표로 선발해 프랑스 파리 평화회의에 참석시키는 한편 작은 아버지 손진형을 국민 대표로 선정해 중국 상해로 보냈는데, 이 때 벽진(碧珍)까지 따라가서 전송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끝내 실토하지 않았다.
1920년 유교진흥회(儒敎振興會)로부터 모종의 제의를 받자, 일제에 협조하는 단체로 규정하고 즉각 거절했다. 1922년 가을에 김창숙이 상해로부터 국내에 잠입, 상해임시정부 독립자금을 구할 때 김창숙을 도와 자금을 수집했으며, 1926년엔 아버지 손진수와 함께 대구경찰서에 체포되어 3년 6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본래 문재(文才)가 뛰어날 뿐 아니라 장석영에게는 주로 경학(經學)과 예학(禮學)을, 곽종석에게는 문장 작법의 요령을 배워 문장의 대가가 되었다. 이진상·장지연 등의 문집 간행에 참여했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심(心)이란, 이기(理氣)를 겸하고 성정(性情)을 통칭하는 것[李滉], 성정의 총칭[李震相], 이기를 합한 것[郭鍾錫], 심은 이는 아니지만 그것을 주재하는 것은 이다[張錫英] 등의 주리철학을 심학의 정통으로 수용했다. 『문암문집(文巖文集)』 22권에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