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공거(公擧), 호는 삼안당(三安堂). 아버지는 인의(引儀) 곽자견(郭自堅)이며, 어머니는 찰방 정유건(鄭惟謇)의 딸이다. 조헌(趙憲)과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전시(殿試)에는 실패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용산(龍山)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어 국안(國安)·민안(民安)·가안(家安)을 바라는 뜻에서 삼안당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학문에 힘썼다.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 송갑조(宋甲祚)와 교분이 두터웠다. 1640년(인조 18)에 쓴 「만언소(萬言疏)」에는 진군도(盡君道: 임금의 도리를 다할 것)·택수령(擇守令: 수령을 잘 가릴 것)·개공안(改貢案: 공안을 개정할 것)·용현재(用賢才: 유능한 인재를 등용할 것)·진기강(振紀綱: 기강을 떨칠 것)·엄군율(嚴軍律: 군율을 엄하게 할 것) 등 치국강병을 건의한 내용이 있는데, 송시열·권상하(權尙夏) 등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저서에 『삼안당유고(三安堂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