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 ()

삼안당유고
삼안당유고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만언소」, 『삼안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공거(公擧)
삼안당(三安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5년(선조 8)
사망 연도
1661년(현종 2)
본관
선산(善山)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만언소」, 『삼안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공거(公擧), 호는 삼안당(三安堂). 아버지는 인의(引儀) 곽자견(郭自堅)이며, 어머니는 찰방 정유건(鄭惟謇)의 딸이다. 조헌(趙憲)과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전시(殿試)에는 실패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용산(龍山) 남쪽에 정사(精舍)를 지어 국안(國安)·민안(民安)·가안(家安)을 바라는 뜻에서 삼안당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학문에 힘썼다.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 송갑조(宋甲祚)와 교분이 두터웠다. 1640년(인조 18)에 쓴 「만언소(萬言疏)」에는 진군도(盡君道: 임금의 도리를 다할 것)·택수령(擇守令: 수령을 잘 가릴 것)·개공안(改貢案: 공안을 개정할 것)·용현재(用賢才: 유능한 인재를 등용할 것)·진기강(振紀綱: 기강을 떨칠 것)·엄군율(嚴軍律: 군율을 엄하게 할 것) 등 치국강병을 건의한 내용이 있는데, 송시열·권상하(權尙夏) 등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저서에 『삼안당유고(三安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삼안당유고(三安堂遺稿)』
『주자대전(宋子大全)』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