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문원박사, 정산현감,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8년 성환찰방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순무사이던 오명항(吳命恒)이 강백의 도움으로 공을 세우고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이 되었는데도 책훈할 때 강백은 오히려 무고한 죄를 입어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유배기간 동안 철산 지방의 젊은이를 교육, 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과거에 많은 합격자를 낸 공로가 참작되어 1732년 죄가 감형되어 정산현감에 제수, 1769년 통정에 오르고 한성부우윤이 되었으나 곧 체직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특히,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풍부하였고 일반 유학자의 시와 비교하면 불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등 보다 다양하고 넓은 시적 세계를 지녔다. 대부분의 작품이 문집인 『우곡집(愚谷集)』 6권에 전한다.
저서로는 『가훈(家訓)』 · 『해사록(海槎錄)』이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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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갑오증광사마방목(甲午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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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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