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청(子靑), 호는 우곡(愚谷). 관찰사 강홍중(姜弘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무(姜珷)이고, 아버지는 강석주(姜碩周)이며, 어머니는 삭녕최씨(朔寧崔氏)로 최윤신(崔胤紳)의 딸이다.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고, 어려서부터 시에 재능을 보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에 합격,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1등, 1727년(영조 3)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승문원박사 · 성균관전적 · 호분위부사맹(虎賁衛副詞猛)을 지냈다.
1728년 성환찰방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순무사이던 오명항(吳命恒)이 강백의 도움으로 공을 세우고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이 되었는데도 책훈할 때 강백은 오히려 무고한 죄를 입어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유배기간 동안 철산 지방의 젊은이를 교육, 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과거에 많은 합격자를 낸 공로가 참작되어 1732년 죄가 감형되어 정산현감에 제수, 1769년 통정에 오르고 한성부우윤이 되었으나 곧 체직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특히,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풍부하였고 일반 유학자의 시와 비교하면 불교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등 보다 다양하고 넓은 시적 세계를 지녔다. 대부분의 작품이 문집인 『우곡집(愚谷集)』 6권에 전한다.
저서로는 『가훈(家訓)』 · 『해사록(海槎錄)』이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