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저자는 인조와 숙종대에 걸쳐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내는 동안 직접 보고 들은 민중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숙종에게 건의한 시무책(時務策)이다.
‘구시급무’란 어려운 시국을 구제하기 위한 시급한 대책이라는 뜻이다. 모두 11장의 한지에 붓글씨로 쓰여 있다.
내용은 왕으로 하여금 옛 성군을 본받아,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기를 부모가 자식에게 하듯 하여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러한 시책을 펴기 위해서는 간신과 소인배를 멀리하고,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서슴지 않는 충신을 등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논지를 전개하는 데는 주로 『상서(尙書)』·『논어』·『맹자』·『중용』·『대학』 등의 경서와 송나라 채침(蔡沈)의 말을 원용하였다. 결론에서는, 첫째 하늘과 땅의 생물지심을 본받을 것(體天地生物之心), 둘째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기르는 데 둘 것(政在養民), 셋째 백성을 기르는 데는 절목을 우선할 것(養民莫先於節目), 넷째 군자와 소인을 분별할 것(辨君子小人) 등 다섯 조목을 들고 있다.
이 시무책이 승정원에 접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시무책 끝부분에 “1675년 2월 통훈대부 전행진산군수 신 이성시가 삼가 엎드려 올립니다(乙卯二月日 通訓大夫 前行珍山郡守 臣 李聖時謹封拜手稽首以獻).”라고 명기되어 있으나, 『숙종실록』 을묘 4월조에는 필자의 이름으로 된 상소가 있을 뿐 이 시무책은 발견되지 않는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