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순조 32)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안민(安慜), 안희(安熹, 1551∼1613), 안신갑(安信甲, 1564∼1597)을 향사하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순흥안씨 후손들이 두릉서당(杜陵書堂)으로 중건하였다.
본래 1824년(순조 24)에 안우기(安于器, 1265∼1329), 안목(安牧, ?∼1360), 안원숭(安元崇) 등을 향사하기 위해 순흥안씨 후손들이 순흥에 세운 용연서원(龍淵書院)에서 향사하고 있었으나, 1832년에 안민의 묘소가 있는 함안 두릉에 별도로 두릉서원을 지어 위패를 이안하였다. 1868년에 훼철된 뒤 1930년에 후손들이 옛터에 두릉서당을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4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안민은 안향(安珦, 1243∼1306)의 10세손으로 선조대에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죽계(竹溪) 안희는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성균관전적·장단부사·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곳곳에서 전과를 올렸다. 안신갑은 안향의 11세손이자 안희의 장질이다. 약관에 등과하여 초계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다 순절한 공으로 선조에게 정려를 받았다.
현재의 두릉서당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비록 서당의 형태로 중건되었지만 현재까지 서원의 기풍에 따라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순흥의 용연서원에 모셨던 제향 인물들의 위패를 함안으로 모셔오면서 두릉서원이 건립되는 과정은 영남지역 순흥안씨들의 성장 및 분파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후 함안의 순흥안씨들은 두릉서원에 제향된 안신갑이 순절하면서 함안에서 창원 퇴촌으로 이거하여 퇴촌동계(退村洞契)를 운영하며 집성촌을 형성하였으며 창원지역의 영향력 있는 문중으로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