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에 경주이씨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22세손 이장희(李章熙)를 중심으로 경주이씨 문중에서 시조 및 파시조 등 5인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시조 표암(瓢岩) 이알평(李謁平)을 주향으로, 국당공파의 파조 국당(菊堂) 이천(李蒨, ?∼1349), 익재(益齋) 이제현,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 가은(佳隱) 이지회(李之會)를 배향으로 모시고 매년 3월과 9월 상정일(上丁日)에 춘추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이천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299년(충렬왕 25)에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여 첨의평리상의(僉議評理商議),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등을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손이다. 1301년(충렬왕 27) 국자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삼사판관(三司判官),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익재집(益齋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도천서원에 함께 배향된 이제현의 방손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판서, 이조판서, 홍문관과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사례훈몽(四禮訓蒙)』, 『주소계의(奏疏啓議)』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서원 건물로는 외삼문인 건인문(建仁門), 강당, 내삼문인 개원문(開元門), 사당인 경덕사(景德祠)가 있다. 건인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이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강당에는 ‘도천서원(道天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강당의 우측에는 경덕사가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가운데 4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대청의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칸을 두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사괴석으로 두벌대 쌓기를 한 기단(基壇) 위에 다듬돌 주초(柱礎)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를 사용하였다. 겹처마의 이익공(二翼工)집이며, 지붕의 양측 면에는 비바람이 치지 않도록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
해방 이후 대동보 발간 및 문중조직 활성화의 결과로 건립된 현대의 대표적인 문중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