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5년(숙종 31)에 송원기(宋遠器, 1548∼1615)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후대에 그의 후손인 송명기(宋命基, 1680∼1755), 송이석(宋履錫, 1698∼1782) 부자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건과 소실되기를 반복하다 2006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향인 송원기는 본관이 야로(冶爐), 자는 학무(學懋), 호는 아헌(啞軒)이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광해군의 폭정을 간하기 위해 육강소(六綱疏)를 올려 상소하였으나 임금이 불윤하자, 병을 칭하고 낙향하여 칠곡 매남(현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에서 강학하였다. 문집으로는 『아헌문집(啞軒文集)』이 있으며, 매양서원 봉안문이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후일 추배된 송명기와 송이석 부자는 송원기의 후손으로 모두 소과에 입격하였으나 출사하지 않고 평생 학문에 종사하였다. 문집으로 각각 『매헌집(梅軒集)』, 『남촌집(南村集)』이 있으며 매양서원 추배 때의 봉안문과 축문이 수록되어 있다.
서원은 전체 영역이 축대 위에 형성되어 있다. 전면에 계단을 배치한 양정문(養正門)을 정문으로 하여 강당을 배치하고, 강당의 우측에 단을 높여 사당인 상현사(尙賢祠)를 배치한 병렬형 배치를 보여준다. 외삼문에는 양정문, 강당에는 매양서원(梅陽書院), 사당에는 상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매양서원은 주향인 송원기의 입묘(入墓)를 계기로 칠곡에 이주, 정착하여 세거해온 야로송씨 문중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칠곡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서원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