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에 있는 조선후기 양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내용
1899년 후손들이 서원터 근처 이강(梨岡) 아래에 다시 건립한 광산서당은 서원 건물로서는 흔하지 않은 ‘ㄱ’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5칸에 동쪽을 ‘ㄱ’ 자로 잇대어 ‘루(樓)’를 만들었다. 정면의 좌측 2칸은 재, 가운데 2칸은 강당으로 구성하여 ‘광산서당’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우측의 루는 2칸으로 분리하여 당호를 ‘춘성루(春成樓)’라 하였다. 광산서당 관련 기록으로는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광산서당중건기(光山書堂重建記)」가 남아 있다.
현재 광산서당에는 고려 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와 그의 12세손 양허국(揚許國), 허국의 아들 양훤, 양훤의 아들 양도남(揚道南) 등 4인의 글을 모아 한말에 4책으로 간행한 『청주세록(淸州世錄)』 목판 135판이 보관되어 있다. 1책은 양기의 사적, 2책은 양허국의 문집, 3책은 양훤의 글을 모은 『어촌유고(漁村遺稿)』, 4책은 양도남의 글을 모은 『무금당유고(無禁堂遺稿)』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미헌 장복추가 양도남의 7세손 양응규의 청으로 이 책의 발문을 지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무민당집(无悶堂集)』
- 『사미헌집(四未軒集)』
- 『척암집(拓菴集)』
- 『경남의 서원』(구산우 외, 선인, 2008)
- 『창녕군인물록』(창녕문화원, 200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