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정언, 교리, 청송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교리에 복직되어 상경중 병으로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 뒤 정승 성희안(成希顔)의 건의에 따라 왕의 특지로 부름을 받았으나 홍경주(洪景舟) 등 간신배가 조정에 있음을 보고 낙향하자 청송부사에 제수되었는데, 재임 3년 만에 임지에서 죽었다.
천성이 매우 청백하여 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았다. 일찍이 영의정 성희안과 젊어서부터 친교가 있었으며, 길재(吉再) · 김숙자(金叔滋)의 학통과 김굉필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이황(李滉)이 일찍이 그의 학문이 깊다고 칭찬하였다.
『안상도(案上圖)』를 지어 자경(自警)하였으며, 성리학자인 박영(朴英)이 그의 문인이다. 선산의 금오서원(金烏書院), 개령의 덕림서원(德林書院)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일선지(一善誌)』
- 『번암집(樊巖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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