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의,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89년 사헌부장령으로 승진하였다. 이 때 유자광(柳子光)이 장악원제조로 임용되자, 장악원제조는 덕망이 있는 자라야 오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이유로 체직을 요청했다가 성균관사예로 전직되었으며,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밀양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이듬해 강경서(姜景敍) 등과 함께 사유(師儒)로 천거되었으며, 의정부사인의 직에 있으면서 사유에 뽑혔다.
잠시 김해부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1493년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그 해 제포(薺浦)에서 왜인과 본국인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 문제가 크게 되자 경상도경차관이 되어 제포에 파견되었는데, 그 때 본국인의 심문을 잘못하여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495년(연산군 1)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병조의 참지 · 참의를 역임했고, 2년 뒤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판에 올랐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일찍이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간행했다 하여 파직당하였다. 김종직 · 정여창(鄭汝昌) 등과 도의교(道義交)를 맺어 성리학을 강론했고, 성종 21년 사유(師儒)로 선발된 13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청빈하여 전도(前導)가 없이 다니니 ‘산자관원(山字官員)’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였다. 선산 경락사(景洛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 『대동기문(大東奇聞)』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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