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도(子鞱) · 자일(子逸), 호는 죽은(竹隱). 강윤리(康允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거례(康居禮)이고, 아버지는 교위(校尉) 강상(康愓)이며, 어머니는 성균관사예 김숙자(金淑滋)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생질이자 문인이다.
1480년에 진사가 되고,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풍저창직장(豐儲倉直長)이 되었다. 이어 홍문관저작 · 성균관전적 · 형조좌랑을 거쳐 외직인 의흥(義興) · 영동(永同)의 현령을 역임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시강원문학이 되었다.
1506년 사간원헌납에 올라 언론활동을 전개하다가, 곧 예빈시첨정으로 전직되었다. 사헌부장령 · 군기시 · 내자시 · 봉상시부정을 역임하였고, 밀양부사와 성주목사를 지냈다. 1510년 제포(薺浦)에서 왜인의 변란이 일어나자, 제용감정(濟用監正)으로 대마도경차관을 겸직하여 왜구를 토벌하였다.
특히 안골포(安骨浦)에서 왜란 진압에 공을 세워 군공일등(軍功一等)으로 보고되었으나, 대간에서 무예를 모르는 자가 군공일등이 될 수 없다고 상계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그뒤 군기감 · 선공감정을 거쳐 승문원판교가 되었다가 기묘사화로 장류(杖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