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성균관전적, 형조좌랑, 승문원판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사간원헌납에 올라 언론활동을 전개하다가, 곧 예빈시첨정으로 전직되었다. 사헌부장령 · 군기시 · 내자시 · 봉상시부정을 역임하였고, 밀양부사와 성주목사를 지냈다. 1510년 제포(薺浦)에서 왜인의 변란이 일어나자, 제용감정(濟用監正)으로 대마도경차관을 겸직하여 왜구를 토벌하였다.
특히 안골포(安骨浦)에서 왜란 진압에 공을 세워 군공일등(軍功一等)으로 보고되었으나, 대간에서 무예를 모르는 자가 군공일등이 될 수 없다고 상계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그뒤 군기감 · 선공감정을 거쳐 승문원판교가 되었다가 기묘사화로 장류(杖流)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허암유집(虛庵遺集)』(정희량(鄭希良))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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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진 급제 : 『성화16년경자3월초3일사마방목(成化十六年庚子三月初三日司馬榜目)』(『세촌선생실기(細村先生實紀)』 卷之下, 李文佐, 국립중앙도서관[한古朝57-가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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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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