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광중(光仲). 강순민(姜舜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간 강경서(姜景敍)이고, 아버지는 강공망(姜公望)이며, 어머니는 최장손(崔長孫)의 딸이다. 동생이 강섬(姜暹)이다.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6년 공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이어서 정언 · 헌납 · 지평 · 남원부사 ·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557년(명종 12) 승지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고, 남원부사 재직시 깨끗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상호군(上護軍)으로 체직되었다.
1558년 공조참의가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관압사(管押使)로 다녀왔다. 그 뒤 우승지 · 도승지 ·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 예조참의 등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566년 수원부사가 되어 기민의 진휼에 공이 있어 향표리(鄕表裏) 1습(襲)을 하사받았다. 인색하고 고집스러우며 청렴하지 못하다는 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