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의금부도사, 사헌부지평,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 사간원사간으로 있을 때 사헌부와 함께 임금에게 간언하여 장 숙원(張淑媛)의 이웃집 철거하는 것을 반대하다 화를 당하여 재령으로 장류(杖流)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1507년(중종 2)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서용(敍用)되었다가, 재직중에 백성들의 진휼(賑恤)을 소홀히 하고 백성들을 다스림에 근면하지 못하다는 경기관찰사의 장계에 따라 한때 파직당하였으나,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로 재서용되었다.
1514년에는 좌의정 정광필(鄭光弼)에 의해 추천되어 이듬해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으며, 그 포상으로 가자되어 당상관에 올라 행호군(行護軍)으로 재직중인 1515년에 죽었다.
성품이 본래 청렴하여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며, 죽은 뒤 염장(殮葬)할 용구조차 갖추지 못하였다. 글씨를 잘 써서 당대에 명필로 그 이름이 높았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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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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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장원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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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재령 유배 : 연산군일기52권, 1504년(연산 10) 3월 15일. "전 대간들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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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청백리 녹선 : 중종실록21권, 1515년(중종 10) 2월 16일. "예조 판서 김전 등을 청백리로 뽑아 향표리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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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죽음 : 중종실록22권, 1515년(중종 10) 5월 25일. "행 호군 강숙돌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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