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국익(國益), 호는 송파(松坡)·나산(羅山). 판서 서성(徐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제조(提調) 서경주(徐景霌)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서정리(徐貞履)이며, 어머니는 판서 이시발(李時發)의 딸이다.
1655년(효종 6) 진사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병조좌랑을 거쳐 1672년 홍문관에 등용된 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이듬해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 1674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1677년(숙종 3) 병조참의에 올랐다.
한때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풍문으로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으나, 아들 서종태(徐宗泰)의 탄원으로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시문에 능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