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시대의 상은 군(裙)의 원형이었다. ≪설문≫에 보면 상은 하군(下裙)이라 하고 군(裙)은 하상(下裳)이라 하여 그 뜻을 거의 구별하지 않고 있다. ≪석명 釋名≫에서는 상은 군의 원형이고 군은 상보다 군폭을 더해서 좀더 미화시킨 것이라 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상은 허리에서부터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잡히고 길이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긴 것이다. 그리고 치맛단에는 일종의 장식선이 붙어 있다. 삼국시대까지는 여자의 전용물이었으나 통일신라가 당나라 복식을 받아들여 착용하면서는 남자들도 상의하상(上衣下裳)인 옷을 입게 되었다.
조선시대는 왕 이하 문무관리들이 예복 착용 시 착용하게 되었다. 이때의 상은 7폭으로 전3폭·후4폭이었는데 따로 떨어져 있으며, 자폭(刺幅)이라 하여 후폭 양방(兩旁)을 각기 1촌쯤 잇고 있다. 또, 상의 허리 사이에는 무수한 주름이 있으며, 석(緆), 즉 가는 베로 가에 선[純]을 둘렀다.
상 옆에 두른 선은 벽(綼)이라 하였고, 상 밑에 두른 선은 문벽(文綼)이라 하였다. 석의 너비는 각 1촌 반이었으며 표리 합하여 3촌이었다. ≪국조오례의서례 國朝五禮儀序例≫ 제복도설(祭服圖說)에서는 훈색 증(繒)으로 만들며 전3폭·후4폭의 7폭에 매폭 양가장자리를 각 1촌씩 꿰매어 이를 삭폭(削幅)이라 하였다.
허리에는 무수한 주름[襞積]이 있었으며, 상 옆에는 순이 있어 벽이라 하고 아래에도 순이 있어 석이라 하였다. 벽과 석의 너비는 각 1촌 반으로서 겉과 안을 합하여 3촌이었다. 전폭에는 조(藻)·분미(粉米)·보(黼)·불(黻)을 수놓았다. 한말 고종의 12장복에서는 명나라 황제 곤복의 상을 본떠서 훈상(纁裳)에 6장문을 수놓았다.
이는 화(火)·종이(宗彝)·조·미(米)·보·불로서 이를 4행으로 나누어 화·종이·조를 2행으로 하고, 미·보·불을 2행으로 하여 수놓았다. 전후폭이 연속되어 휘장과 같이 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