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백관이 왕의 행행(行幸)을 따를 때, 무관이 진영(陣營)에 나갈 때에 융복 차림을 하면서 겉옷으로 철릭을 입고 신목이 긴 수화자(水靴子)를 신었다. 그리고 왕실의 진찬, 진연 때에 선유락 집사 여령이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수화자를 신는다. 영조 2년(1726) 10월 8일에 무신(武臣)이 흑철릭을 입고 수화자를 신는 것은 움직이고 걷기에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고 이듬해 1727년에는 무신의 수화(水靴)는 옛 규정으로, 철릭을 입으면 수화를 신고 장복(章服, 단령 지칭)을 입으면 항화(項靴, 목화(木靴) 지칭)를 신도록 한 것으로 보아 수화자와 목화의 용도를 달리하였음을 알수 있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 “화자는 순전히 가죽으로 만들던 것이 뒤에 전(氈)으로 내장하고, 외부는 청금선(靑錦縇)으로 둘러서 밖에서 보이게 하고, 고급품은 금단(錦緞)으로 꾸몄다. 근래에 새로 생긴 것으로 태조가 어제(御製)한 모양대로 만드니 수화자와 같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화자와 수화자의 기본 모양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역대 『진찬의궤』류에서 융복 차림을 하는 선유락 집사가 신는 수화자를 통해 형태가 확인된다. <복식도>에 묘사된 선유락 집사의 수화자는 신목이 길고 상부에 장식선이 있으며, 앞축이 뾰족하고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이다. 또한 가자복식(歌者服飾) 중에서 녹단령(綠團領)에 갖춰 신은 흑화(黑靴)의 모양은 앞부분이 둥글게 묘사되어 있다. 수화자는 단령을 입을 때 신는 흑화와 전체적인 형태는 유사하면서도 신울의 앞코 끝이 뾰족한 것에서 차이를 보이는 형태로 확인된다.
『(기축)진찬의궤』(1829) 품목(稟目) 조에는 선유락 정재 여령의 복식에 소용되는 품목과 재료가 기록되어 있다. 수화자는 검은색 공단[黑貢緞, 무늬 없는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고 상부를 초록색 운문단(雲紋緞, 구름 무늬 비단)을 장식하였으며 안감과 밑창이 포함되어 있다.
백관들이 단령을 입을 때 신어 왔던 흑피화[목화]가 시대별로 길이와 재질에서 변화를 보인 것처럼 수화자 또한 비슷한 형태 변화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지는 유물은 매우 적고 간략해서, 개인 소장의 19세기 수화자 유물이 대표적이다. 신울을 검정색 가죽[黑皮]으로 만들고 신코가 뾰족한 모양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흑피화(黑皮靴)와 유사하여, 흑피로 만든 혜(鞋)와 말 부분으로 구성된 신목은 청색으로 깃 장식이 되어 있고 길이가 짧은 편이며 두꺼운 가죽 밑창이 앞코까지 올라와 굽어져 있는 모습이다. 『진찬의궤』 복식도에 묘사된 수화자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유물을 수화자로 추정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