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개항기, 문관의 복식 제도에서 정한 대례복 다음의 예복.
연원
이후 대한제국기인 1900년 4월 17일에 발표된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文官服裝規則)」에서 연미복을 소례복으로 지정하여 소례복이 양복형으로 바뀌었고, 1905년에는 연미복과 프록코트의 두 종류로 분화되었다.
형태와 제작방식
1898년 6월 18일에는 외국에 파견되는 외교관의 경우 대례복과 소례복 모두 소매가 좁은 흑단령을 착용하도록 하였고, 다만 흉배의 유무로 구별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소매가 좁은 흑단령의 유물은 대부분 좌우에 있는 무의 형태가 두루마기와 유사한 삼각무이다. 조선 후기의 단령은 뒤로 젖힌 직사각형 무가 달린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삼각 무를 달았다는 점에서 착수 흑단령은 소매통을 줄인 것뿐만 아니라 무의 형태도 간소화된 것이었다.
1900년 4월 17일에 발표된 「문관복장규칙」부터 소례복은 서양의 실크해트, 연미복, 조끼, 바지로 구성되었다. 소례복은 궁내에서 진현(進見)을 할 때, 공식적인 연회에 참석할 때, 상관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할 때, 사적으로 서로 축하하고 위로할 때 착용하도록 하였다. 소례복의 또다른 용도에는 대례복을 착용할 수 없는 판임관이 대례복을 착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대례복을 대용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1900년의 규정에서 소례복은 연미복의 한 종류였지만, 이후 두 종류로 분화했다. 1905년 1월 16일 관보의 정오(正誤)에 「문관복장규칙」의 4조 소례복, 7조 연미복 착용일, 8조 프록코트 착용일을 삽입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례복은 2종으로 먼저 연미복은 실크해트, 조끼, 바지, 구두로 구성되었다. 연미복의 조끼는 가슴 부분이 열린 형태였고 바지는 상의와 같은 색이었으며 구두는 칠한 가죽으로 만들었다. 다음으로 프록코트는 실크해트, 조끼, 바지, 구두로 구성되었다. 프록코트의 조끼는 가슴 부분이 서서히 좁아지는 형태였고 바지는 상의와 다른 색이었다. 연미복은 각국의 사신을 만날 때,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 때, 내외국의 관인과 만찬할 때 착용하도록 하였고, 프록코트는 궁내에서 진현할 때, 각국의 경절을 축하하여 예를 차릴 때, 사적으로 서로 예방할 때 착용하도록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도입된 소례복인 연미복과 프록코트는 근대 서양의 남성복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었므로 서양에서 유행하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현재 이 시기의 연미복은 보고된 유물이 거의 없고 프록코트는 부산 박물관에 소장된 박기종(朴琪淙, 1839~1907)이 착용했던 유물이 있다.
변천 및 현황
또한 이 문헌에는 대한제국까지 규정이 없었던 여성의 소례복도 정리되어 있다. 적의를 대례복으로 착용할 수 있는 왕비와 왕세자비는 소례복으로 원삼을 착용하고, 대군의 비 이하는 소례복으로 당의를 착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에는 서양 예복에서 유래한 소례복과 함께 전통식 소례복도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례복으로 도입된 프록코트는 이후 서양 남성들에게 모닝코트, 턱시도 등이 유행하면서 착용 빈도가 줄었다. 오늘날에는 연미복 역시 외교 석상이나 공연할 때 연주자들이 착용하는 옷 정도로 착용하고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구한국)관보』
- 『고종실록(高宗實錄)』
- 『대한예전(大韓禮典)』
- 『예복(禮服)』
단행본
- 이경미, 『제복의 탄생-대한제국 서구식 대례복의 성립과 변천-』(민속원, 2012)
논문
- 이경미, 「개항기 전통식 소례복 연구」 (『복식』 64-4, 한국복식학회, 2014)
- 이경미, 「대한제국기 서구식 소례복 연구」 (『한복문화』 21-3, 한복문화학회, 2018)
- 이경미, 「장서각 소장 禮服의 서술 체계와 근대 복식 사료로서의 특징」 (『아시아民族造形學報』 21, 아시아민족조형학회, 202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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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구한국)관보』 개국 504(1895)년 8월 11일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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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구한국)관보』 개국 503(189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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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대한예전』 권5 「관복도설(冠服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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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종실록』 권39 광무 3년(1899)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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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구한국)관보』 광무4년 4월 19일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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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구한국)관보』 광무9(1905)년 1월 16일 정오(正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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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예복(禮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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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검은 사(紗)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흔히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이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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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관을 쓰고 띠를 맨다는 뜻으로, 예복을 입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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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예전에, 사모관대를 할 때 신던 신. 바닥은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고 검은빛의 사슴 가죽으로 목을 길게 만드는데 모양은 장화와 비슷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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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임금께 나아가 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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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바르고 그른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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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임금이 내린 명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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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남자용의 서양식 예복의 하나. 보통 검은색이며 저고리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온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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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 검은 사(紗)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흔히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이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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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남자가 쓰는 정장용 서양 모자. 춤이 높고 둥글며 딱딱한 원통 모양에 윤기가 있는 깁으로 싸여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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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관직에 있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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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온 국민이 기념하는 경사스러운 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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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는 시립 박물관. 1978년에 개관한 ‘부산직할시립 박물관’이 그 전신으로, 1995년 ‘부산광역시립 박물관’, 200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장 유물이 11,300점에 이르며, 6개의 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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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
: 남자가 낮 동안 입는 서양식 예복. 프록코트 대용으로 입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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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1
: 남자가 입는 야간용 약식 예복. 모양은 양복과 비슷하며 위 깃은 견직으로 덮고 바지 솔기에 장식이 달린 것으로, 연미복의 대용으로 입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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