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대는 왕·왕세자·동궁비가 하였는데, 왕과 왕세자는 조복(朝服)과 상복(常服)·제복(祭服)을 입을 때 하고, 동궁비는 예복에만 하도록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황제에게 사여(賜與)받기도 하였으며, 왕이 전공을 세운 중신 또는 중흥공신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왕이 상복, 즉 곤룡포(袞龍袍)를 입을 때 하였는데 대의 속은 홍색 비단으로 싸서 금박을 하였다. 왕세손은 조선 초기에는 옥대를 쓰다가 1648년(인조 26)에 수정대를 사용하도록 정하였다.
왕비가 옥대를 착용한 기록은 고종이 황제에 오르자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운룡문(雲龍文)을 묘금(描金)한 청색비단[靑綺鞓] 바탕에 옥붙이 10개, 금붙이 4개가 장식된 옥대를 착용하였다는 기록이다. 옥은 청·현·적·백옥 중에서 무늬없는 백옥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유물로는 순종황제가 왕세자일 때 착용한, 바닥은 청색 비단에 금줄 5줄이 그어져 있고 무문백옥(無文白玉)의 띠돈이 부착된 옥대가 있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대학교 박물관에는 무문백옥의 띠돈에 띠의 바닥은 홍색 비단으로 되어 있고 안쪽은 무늬있는 황색 비단을 댄 옥대가 있다.
또 세종대학교 박물관에는 동궁비가 적의(翟衣)를 입을 때 하였던 무문백옥의 띠돈에, 대의 겉은 보라색 공단에다 금줄 5개가 그어져 있고, 대 안쪽은 하늘색 비단을 댄 띠가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