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복』의 저자는 미상이다. 이 책은 정식으로 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가 표기되어 있다. 이왕직은 1910년 8월 일제의 한국병탄 이후 설치된 관서로, 이왕가(李王家)에 관련된 사무의 일체를 담당하였다. 일본 궁내성(宮内省) 소속이었고, 1911년 2월 1일부터 업무를 시작하였다. 대한제국에서 황실 업무를 담당한 관서는 궁내부(宮內府)인데, 일제강점기에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되면서 궁내부를 계승해 설치되었다. 이왕직 내부의 부서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는데, 예식과는 1920년에 설치되었다. 제사, 빈객 접대, 아악 등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였다.
정확한 찬집 연도는 미상이다. 그러나 일본어 표기가 있다는 점, 내용 중 ‘이조(李朝)’라는 표현과 대한제국 황실 구성원들이 ‘왕공(王公)’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찬집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1920년에 설치된 이왕직의 ‘예식과’가 표기되어 있고, 같은 해 설립된 인쇄소인 대해당(大海堂)의 명칭이 들어간 ‘대해당납(大海堂納)’이 인쇄되어 있어 그 이후에 찬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자료의 찬집 경위에 대해 영친왕비(英親王妃) 이방자(李方子, 나시모토 마사코) 여사에게 조선의 예복(禮服)을 소개하고 정리할 필요에 의해 제작된 책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석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
현재 2종의 자료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1종은 문자로 된 내용만 있고(K2-2129 A 1-1), 1종은 문자로 된 내용 뒤에 도식이 덧붙여져 있다(K2-2129 B 1-1). 자료 A 1-1이 초고이고, 여기서 수정한 내용을 기초로 B 1-1로 재정리하였다. 기본 언어는 한문이고, 중간중간 일본어가 있다.
『예복』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복식을 수록하였다. 왕실과 황실 구성원 및 관원과 배우자, 일반인의 복식이 포함된다. 황제국인 대한제국을 개국한 후에 변화되었던 복식도 들어 있다.
이 책의 문자로 된 내용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맨 앞에는 “ 대례복(大禮服)과 소례복(小禮服)에 상당하는 조선 고유의 예복”이라는 제목이 붙은 〈표〉가 있다. 왕과 왕비 이하 왕실의 구성원, 관직자와 일반인 및 그 배우자들까지 포함하였다. 면복(冕服), 원유관(遠遊冠)을 포함하는 복식, 익선관(翼善冠)을 착용하는 복식 등 이하 여러 종류의 복식이 신분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다음은 ‘현행예복(現行禮服)’이라고 표기된 부분이다. 이전의 문헌에서 관련 내용을 가져오면서 출처를 밝히고 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부분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내용을 가져와서 왕 이하 신분별로 태조 때부터 복식의 연혁을 정리하였다. 면복, 원유관복, 대삼제(大衫制), 적의(翟衣), 대군과 왕자, 왕손(王孫)의 오사모(烏紗帽)와 흑단령(黑團領) 제도에 관한 것이다. 둘째 부분은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 권2 「가례(嘉禮)」의 내용을 가져왔다. 이것은 이전의 다른 문헌에 수록되지 않고 조선 후기의 『국조속오례의보』에만 수록된 복식들이다. 왕, 왕세자, 왕세손의 익선관복, 왕세자와 왕세손이 관례(冠禮, 성인식)를 올리기 전에 착용하는 공정책(空頂幘) 차림에 관한 것이다. 셋째 부분은 대한제국의 복식에 관한 것인데, 『대명회전(大明會典)』의 내용을 가져온 것과 대한제국 개국 후 새로 제정한 것으로 나뉘어 있다. 『대명회전』에서 가져온 제도는 황후, 황태자비, 친왕비의 원삼[團衫]이고, 대한제국 개국 후 새로 제정한 제도는 황제의 12장 면복부터 친왕의 면복까지이다.
다음은 ‘광무원년(光武元年) 시정예복(始定禮服)’으로 표기된 부분이다. 광무원년은 1897년 대한제국이 개국된 해이고, 이 해에 황제국 체제에 부합하도록 새로 제정된 예복 제도를 수록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증보문헌비고』에서 가져온 제도임을 밝히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그 이전 자료인 『대한예전(大韓禮典)』에 수록된 제도이다. 『대한예전」은 1898년(광무 2) 연말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증보문헌비고』는 1908년(융희 2) 즈음에 편찬되었는데, 『대한예전』에 수록된 내용을 『증보문헌비고』에서 전재(轉載)하였고, 『예복』에서 『증보문헌비고』의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또 관원의 대례복과 소례복을 수록하였다.
다음은 ‘민예복(民禮服)’으로 표기된 부분이다. 『증보문헌비고』의 내용을 가져온 부분과 『대전회통(大典會通)』의 내용을 가져온 부분으로 나뉜다. 전자는 관원의 관복(官服)과 외명부(外命婦)의 복식이고, 후자는 조복(朝服), 제복(制服), 공복(公服), 상복(常服) 등의 관복에 관한 내용이다.
그 뒤의 도식은 ‘광무원년 시정예복’, ‘현행예복’으로 되어 있다. 전자에는 황제와 황태자의 면복 일습과 황후의 관이 있다. 후자는 면복, 통천관(通天冠)을 착용하는 복식, 원유관복 등의 조복, 익선관복, 적의, 원삼, 관원의 복식, 유생복(儒生服), 일반 부인복 등이 있다.
이 책은 저자, 찬집 연도, 찬집 경위 등을 알 수 없고, 수록 내용도 앞서 편찬된 문헌에서 취한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 제도의 제정 연도 등을 명시한 부분이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事實)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 ①, 왕세자 면복의 제목 아래에 ‘성종연간[成宗朝]’이라 적어서 왕세자의 면복이 이 시기에 제정된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데, 문종 즉위년에 명나라에서 면복이 옴.
예 ②, 왕세자 원유관복(7량 원유관)이 처음 제정된 시기를 ‘성종연간’이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1500년(연산군 6) 제정되고 실제 사용은 1522년(중종 17)에 이루어짐.
또한, ‘현행예복’으로 제시된 복식에 대한제국기 이후 사용되지 않은 복식도 있고(황제 통천관 도식은 실제 사용한 것과 다름), 1920년대에는 이미 소멸한 복식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