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고종황제의 어진(御眞)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1897년 새로 정한 통천관의 제양을 보면, 관은 오사(烏紗)로 쌌는데 전후를 각 12봉(縫)하였고, 그 12봉 가운데에 5채옥(采玉) 12개씩을 장식하였으며 옥잠도(玉簪導)를 꽂게 되어 있고 홍색 조영(組纓)이 달려 있다. 여기서 12봉은 12양(梁)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 명(明)나라의 피변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원래의 통천관은 『당서(唐書)』 거복지(車服志)에 의하면 흑개책(黑介幘)에다 전후 12양을 합하여 24양을 만들고 앞양 위에는 매미[蟬] 12수(首)를 붙이고, 또 양마다에는 취주(翠珠)를 장식하였으며 관 정면에는 금박산(金博山)을 가시(加施)하였다.
그리고 조영에는 취옥을 꿰었고 서잠도(犀簪導)를 꽂았다. 통천관의 명칭은 『남제서(南齊書)』 여복지(輿服志)에 의하면 통천관에 박서잠도(駁犀簪導)를 꽂았는데, 이 박서는 모태(母胎)에 있는 동안에 천공(天空)의 현상에 감통(感通)하여 그 뿔에 특수한 아름다운 박리(駁理)를 발생한다는 데서 통천서(通天犀)라 하였고, 이 서각(犀角)을 잠도(簪導)로 사용한 데서 관명도 그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