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왕족 나시모토[梨本宮]의 장녀로 1918년 일본 가쿠슈원[學習院]을 졸업한 뒤, 1920년 4월 한일융화의 초석이 되라는 일본왕의 명령에 의해 대한제국의 황태자인 이은과 강제로 정략혼인을 하였다. 그 뒤 일본에서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63년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영왕 이은과 함께 귀국하였다. 귀국 후 전부터 구상해 왔던 장애인 사업을 추진해 1963년부터 1982년까지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1966년 1월 사단법인 자행회(慈行會)를 설립해 정신박약아를 위한 복지사업에 헌신하였다.
1967년 11월에는 YMCA에서 빈민돕기사업을 하던 재단법인 보린원(保隣園)을 인수해 농아와 소아마비아를 위한 명휘원(明暉園)을 설립했는데, ‘명휘(明暉)’는 영왕의 아호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명휘원의 교육기관으로 1978년 명휘회관(明暉會館)을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세웠다.
이곳에서 교육받는 불우한 이들의 자립을 위해 일본에서 배웠던 칠보를 만들어 파는 등 헌신하였다. 1971년 경기도 수원시 탑동에 자혜학교(慈惠學校)를 설립해 갈 곳이 없는 정박아들을 교육시켰으며, 1973년 자혜학교 여자기숙사도 설립하였다.
또한, 같은 해 숙원사업이던 영왕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켜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영왕과 왕가의 유물들을 보전하는 데 마지막 사명을 다하였다. 이후에도 자행회와 명휘원의 총재직을 계속 맡아 활동하였다. 직장암으로 수술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들 이구(李玖)와 지내다가 1989년 귀국했으나, 이 해 4월 30일 낙선재에서 죽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내에 영왕과 합장하였다. 저서로는 『지나온 세월』·『The World is One』·『세월이여 왕조여』 등이 있다.
1972년 서울시문화상,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소파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