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갑오개혁(甲午改革) 시기에 국가 사무를 보는 의정부(議政府)와 별도로 왕실 사무를 보는 궁내부(宮內府)가 설립되어, 행정과 재정에 있어 국가와 왕실 관련 기구로 이원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복식에서는 궁내부가 설립될 때부터 1905년(광무 9)까지 일반 문관(文官)과 같은 제도가 적용되었다. 따라서 1906년(광무 10) 2월에 제정된 이 제도는 일반 관원과 차별화되는 궁내부만의 복식 제도를 제정함으로써 복식의 이원화를 목적으로 한다.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예복 규칙」과 「궁내부 본부 및 예식원 대례복과 소례복 제식」은 1906년 2월 27일 제정되어 28일 『관보(官報)』에 게재되었다. 또 「제식」의 마지막 조항에는 ‘도본(圖本)’ 즉 도식(圖式)을 별도로 반포한다고 하였다. 비록 『관보』에 해당 도식은 게재되지 않았고 현재 그 원본 도식도 발굴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옷의 형태와 무늬를 그림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근대에 서구식 복식을 규정할 때는 「~규칙」, 「~제식[製式. 혹은 ‘복제(服製, 服制)’, ‘복식(服式)’, ‘규제(規制)’라 함]」, 「~도식」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반포한다. 「규칙」에서는 복식의 종류, 착용 신분, 착용 상황, 복식 종류별 구성 요소 등을 규정한다. 「제식」에서는 「규칙」에 있는 각 복식의 세부 형태, 크기, 장식 등을 문자로 규정하고, 「도식」은 「제식」에서 규정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궁내부 관원의 복장은 「규칙」에서 대례복과 소례복 두 종류로 정하였고, 「제식」에서 대례복과 소례복의 구성품별 형태를 규정하였다.
대례복은 친임관(親任官), 칙임관(勅任官), 주임관(奏任官)이 황제에 대한 문안, 황제와 황태자의 거둥, 공식 석상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 궁중 연회가 있을 때 등에 입으며, 소례복은 궁내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나 공식 연회 등에 입는다. 대례복은 대례모(大禮帽), 대례의(大禮衣), 하의(下衣: 조끼), 대례고(大禮袴: 바지), 검(劍), 검대(劍帶), 백포하금(白布下襟: 깃 안쪽에 대는 흰색 부착물), 백색 장갑[手套] 등으로, 소례복은 대례모, 소례의(小禮衣), 하의(조끼), 바지, 대례검(大禮劍), 검대, 백포하금, 백색 장갑 등으로 구성된다.
1906년에 제정된 궁내부의 서구식 관복은 1910년 일제의 한국 병탄(竝呑)까지 착용되었다. 1911년 2월 이왕직(李王職) 설치 후인 4월 8일에 이왕직 직원이 다시 일반 문관 대례복을 입도록 규정하면서 궁내부만의 복제는 사라진다.
궁내부 설립 이래 소속 관원의 복제가 별도로 제정되지 않다가 1906년 처음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 황실 상징 무늬로 이화(李花)를 사용해 국가 상징 무늬인 무궁화[槿花]와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