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령은 조선시대 세종대 이후 문무 관원이 예복으로 착용한 아청색 또는 유록색 단령이다. 사모와 품대, 화자와 함께 착용하였다. 흑단령 제도는 1446년(세종 28) 대소 조의(朝儀)에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자는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당상관 이상이 무늬 있는 아청색 비단의 흑단령을 입었으며 3품까지 흉배를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유록색으로 색상이 바뀌고 9품까지의 모든 관원이 흉배를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는 북청색 계통의 반령착수(盤領窄袖)로 바뀌었고 흉배 유무에 따라 대례복과 소례복으로 구분하였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건의에 의해 입기 시작한 백관(百官)의 사모(紗帽) · 단령(團領)은 조선 초 관복인 상복(常服) 또는 시복(時服)으로 이어졌다. 사모와 단령 외에 품대(品帶)와 화자(靴子)도 갖추었다. 색상에 대한 규정은 없었기에 어떠한 색상이라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1446년(세종 28) 대소 조의(朝儀)에 검게 염색한[黑染] 조의(朝衣)를 입도록 하였다. ‘흑의(黑衣)’인 ‘흑단령(黑團領)’의 시작이다. 당상관(堂上官) 이상은 단자(段子)나 사(紗) · 라(羅) 등 무늬 있는 직물로 만들고 3품 이하의 관원은 본국의 옷감[布物]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1454년(단종 2) 6월,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건의로 상복에 흉배(胸背) 제도가 적용되었다.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 손소(孫昭, 14331484)나 오자치(吳自治, 생몰 미상)의 1476년(성종 7) 공신 초상에 보이는 단령은 세종대의 ‘흑염조의(黑染朝衣)’에서 비롯된 ‘흑단령(黑團領)’에 흉배 제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 당시 명칭은 분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단지 ‘ 예복(禮服)’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1485년(성종 16) 『경국대전(經國大典)』 「의장(儀章)」 조에 “ 조참(朝參) · 상참(常參) · 조계(朝啓)에 입는다.”는 흑의가 곧 ‘흑단령’이다. 이륙(李陸, 1438~1498)의 『청파극담(靑坡劇談)』에 따르면 당시 흉배를 갖추기 어려웠기에 예연(禮宴)에서 입는 흑단령에만 흉배를 사용하였다.
1518년(중종 13)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따르면 흑단령이 시복인데 색상은 ‘아청색(鴉靑色)’이라고 하였다. 1520년(중종 15)에는 “상참, 조참, 배사(陪祀) 시에는 시복 흑단령을 착용하고 경연(經筵)과 같은 다소 편한 자리에서는 상복 홍단령(紅團領)을 착용한다.”고 하여 시복과 상복의 용도를 구분하고 있다. 중종대와 선조대의 공신상(功臣像)에 보이는 흑단령은 당시의 ‘시복’이다.
이 시기에는 시복인 흑단령에만 흉배를 다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었다. 16세기 정국공신상(靖國功臣像)인 이우(李堣)나 17세기 초 권응수(權應銖) 초상화 등에서 당시의 시복 흑단령을 확인할 수 있다. 당상관의 경우, 아청색 운문(雲紋) 흑단령을 착용하였고, 당하관(堂下官)은 아청색 무문(無紋)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문 · 무 3품 이상은 품계에 따른 흉배를 장식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당시 예조 판서 이정귀(李廷龜, 1564~1635)는 『오례의(五禮儀)』에 ‘흑단령’이 ‘상복’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흑단령을 상복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사헌부(司憲府)가 이정귀의 판단에 동조함에 따라 ‘흑단령’의 명칭이 '시복'에서 ‘상복’으로 바뀌었다. 명칭이 반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단령은 ‘의례용(儀禮用) 단령’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청색이었던 흑단령은 숙종대 이후 짙은 녹색 계통의 현록색(玄綠色) 또는 유록색(柳綠色) 흑단령으로 색상이 바뀌었다. 조선 후기 백관의 흑단령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짙은 녹색이 현록색이자 유록색이다. ‘현록색’이라는 기록은 영조대의 『속대전(續大典)』에 한 번만 보이는 반면, 대부분 ‘유록색’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상관은 유록색 운보문(雲寶文) 흑단령을 착용하였고, 당하관은 유록색 무문 흑단령을 착용하였으며 18세기 이후 당상관 · 당하관 모두 흉배를 장식하였다.
1870년대 이후 유록색의 흑단령은 북청색에 가까운 색상으로 변하였다. 조선 전기의 반령착수(盤領窄袖)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甲申衣制改革)으로 집무복으로 착용하던 홍단령이 폐지되고 흑단령으로 통합되었다. 반령착수 단령을 입도록 하되, 예복으로 입을 때는 흉배를 달도록 하였다. 즉 예복과 집무복을 흑단령 하나로 통합한 것인데 흉배는 탈착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제도가 변경되었으나, 1898년(고종 35)에도 대례복(大禮服)으로 유양흑반령착수포(有揚黑盤領窄袖袍)에 사모, 품속대(品束帶), 패수(珮垂), 화자(靴子)를 착용하도록 하였으며 소례복(小禮服)으로는 무양흑반령착수포(無揚黑盤領窄袖袍), 사모, 품속대, 화자를 신도록 하였다. 갑신의제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흉배의 유무로 대례복과 소례복으로 구별하였다. 이후 국운이 다하면서 흑단령 제도는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