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대전 ()

속대전
속대전
조선시대사
문헌
1746년 『경국대전』의 총 213항목 중 76항목을 제외한 137항목을 개정, 증보하여 편찬한 법제서.
정의
1746년 『경국대전』의 총 213항목 중 76항목을 제외한 137항목을 개정, 증보하여 편찬한 법제서.
서지적 사항

6권 4책.

편찬/발간 경위

『경국대전』의 시행 뒤 『대전속록(大典續錄)』·『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이 나오고 계속해서 법령이 증가했으나, 이들 법전과 법령간에 상호 모순되는 것이 많아 관리들이 법을 적용하는데 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1682년(숙종 8)부터 『수교집록(受敎輯錄)』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1688년에 이조판서 박세채(朴世采)가 사직소(辭職疏)에서 경제사(經濟司)를 설치, 『경국대전』 뒤의 모든 법령 중에서 시행할 수 없는 법은 바꾸거나 증보하여 『속대전』이라는 법전을 편찬함으로써 제도를 새롭게 하자고 주장했는데, ‘속대전’이라는 용어는 여기서 처음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경국대전』과 각 속록 등의 조문을 하나로 통일하는 방법에 따라 『전록통고(典錄通考)』·『증보전록통고(增補典錄通考)』 등이 편찬되어 법령의 편람에 이바지할 뿐이었다.

영조가 즉위한 뒤 비로소 제2의 대전을 편찬할 결심을 하고, 1740년(영조 16)부터 이 법전의 편찬이 시작되었다. 1744년 따로 찬집청(纂輯廳)을 설치하고 당상(堂上)·낭청(郎廳)을 임명해 박차를 가하였다.

형조판서 서종옥(徐宗玉), 호조판서 김약로(金若魯), 예조판서 이종성(李宗城), 부사직(副司直) 이일제(李日躋)·김상성(金尙星)·구택규(具宅奎) 등 6인을 책임자로 하였다.

그리고 부호군 신사관(申思觀), 부교리 서지수(徐志修)·어석윤(魚石胤), 부사과(副司果) 김상복(金相福)·이규채(李奎采)·윤광찬(尹光纘)·남태기(南泰耆)·이게(李垍)·정하언(鄭夏彦)을 실무 담당자로 임명하여 모든 법령을 수집, 분류, 검토하여 초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의정 김재로(金在魯), 좌의정 송인명(宋寅明),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이 감수하였다. 법령의 취사에는 일일이 영조의 결재를 받았는데, 영조 자신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그 해 8월에 법전이 거의 완성되어 영조자신이 서문을 썼으며, 11월 하순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구택규와 정하언을 교정관으로 임명하여 다시 전반적인 교정을 거쳐, 이듬 해 5월 교서관에게 『경국대전』과 『속대전』을 간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작은 조목에서 누락되거나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을 우려, 교정관과 함께 삼사가 회동하여 검토한 다음 1746년 인쇄를 완료하였다.

『경국대전』의 반포, 시행으로부터 260여 년 뒤, 편찬을 착수해 약 8년만에 『속대전』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법전은 두 개로 되었다.

이 법전은 『경국대전』의 총 213항목 가운데 76항목을 제외한 137항목을 개정, 증보했으며 주로 호전·형전 등에 18항목이 새로 추가되었다. 초간본이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수교집록(受敎輯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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