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묘 출토복식은 16세기 중후반기를 살았던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등 유물 일괄이다. 2010년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55건 73점이 수습되어 총 96건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과 상장속(喪葬俗)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산 구성이씨(駒城李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 묘 출토복식(出土服飾)은 2010년 5월 경기도 오산시 가장지구 문화재 발굴 조사 과정에서 16세기 중후반 시기로 추정되는 2기의 무연고 회격묘(灰隔墓)가 발견되어 복식 전문가가 참여하여 염습 과정을 기록하며 총 96건 124점 반가(班家) 여인의 복식 유물과 미라가 출토한 사례이다. 각각의 관(棺) 위에 놓여 있던 명정(銘旌)에 쓰여진 ‘유인구성이씨지구(孺人駒城李氏之柩)’, ‘의인여흥이씨지구(宜人驪興李氏之柩)’라는 묵서로 무덤의 주인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복식은 신체 크기와 상관없이 옷 품이 매우 크고 넓은 형태를 보여 조선 중기에 유행한 복식 특징을 보여 묘주(墓主)의 활동 시기를 16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구성이씨 관에서는 41건 51점, 여흥이씨의 관에서 55건 73점을 수습하였다. 유물 중 조선 전기의 단령(團領)형 원삼(圓衫), 당저고리[唐赤古里], 스란치마, 그리고 자수 바늘꽂이[노리개] 등을 통해 당시 상류 사회 여성의 의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철릭과 액주름 등 남성 복식도 발견되었다. 여흥이씨가 머리에 쓰고 있었던 가리마는 당시의 착장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2021년 6월 2일에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 번호가 일괄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이씨의 묘에서는 총 5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종류는 단령형 원삼 1점, 대대 1점, 장옷[長衣] 5점, 장저고리[長赤古里] 8점, 단저고리[短赤古里] 5점, 적삼 1점, 남자 저고리 1점, 치마 5점, 개당고(開襠袴) 1점, 철릭[貼裏] 1점, 멱목(幎目) 1점, 여모(女帽) 1점, 악수(幄手) 1점, 습신 2점, 소낭(小囊) 3점, 대렴금(大斂衾) 1점, 관내 배접천 1점, 구의(柩衣) 1점, 명정(銘旌) 1점, 현(玄) 1점, 훈(纁) 1점, 지요(地褥) 1점, 삽(翣) 4점, 소매 조각 2점이다.
단령형 원삼은 조선 전기에 여성이 의례복으로 입은 옷으로, 남성의 단령과 비교하여 둥근 깃은 같으면서 짧은 소매와 접선(摺扇)형 무에서 형태 차이를 보이는 옷이다. 구성이씨의 단령형 원삼은 몸판은 운보 문사, 옷고름은 명주로 만든 홑옷으로, 가장 겉에 착장하고 있던 수의이다. 저고리류에는 단저고리와 장저고리, 적삼이 있는데, 겉깃이 모두 목판깃 형태이며 옷품이 매우 넓고 옷고름은 짧고 좁다. 이 가운데 장저고리 1점은 깃, 섶, 무, 앞길과 뒷길의 하단부를 연화보문(蓮花寶文) 직금단(織金段)을 사용하고 몸판 상부는 소화문단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재질로 보아 당저고리(당의의 전신)에 해당하는 옷이다. 당저고리는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덧입는 길이가 긴 의례용 옷이다. 짧은 저고리의 경우도 50㎝ 내외의 길이여서 입었을 때 옷 품이 넉넉하고 둔부를 가리게 되므로 치마는 허리춤에 입는다. 5점의 치마 중 3점은 접음단 치마형이고 나머지는 전단후장(前短後長)형 거들치마이다. 이 중 하나는 직금으로 된 쌍스란 치마인데, 연화보문단 치마 바탕에 동자 무늬 직금 스란단을 장식하고 명주 허리말기를 달아 만든 전단후장의 의례용 홑치마이다. 이외에 수례지의(襚禮之衣, 죽은 이의 묘에 가족이나 지인의 옷을 넣어준 것)로 사용된 철릭과 남성용 저고리도 있다. 구성이씨 묘 출토복식은 직금단(織金緞), 연화만초문단(蓮花蔓草紋緞), 세화만초문단(細花蔓草紋緞), 운문단(雲紋緞), 운보문단(雲寶文緞), 운보문사(雲寶文絲), 공단(貢緞), 주(紬) 등 다양한 재질의 옷감이 사용되었으며, 홑, 겹, 솜, 솜누비 옷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여흥이씨의 묘에서는 총 73점의 복식이 출토되었다. 종류는 장옷 3점, 장저고리 4점, 저고리 6점, 적삼 2점, 접음단 치마 3점, 평치마 1점, 전단후장형 치마 1점, 합당고(合襠袴) 6점, 개당고 2점, 액주름 1점, 철릭 2점, 가리마 1점, 자수바늘집 노리개 1점, 귀이개 1점, 얼레빗 1점, 참빗 1점, 솔 1점, 버선 1점, 습신 2점, 멱목 1점, 소렴금(小斂衾) 1점, 소렴교(小斂絞) 5점, 대렴금 1점, 대렴교(大斂絞) 6점, 소낭 3점, 관내 배접천 1점, 현 1점, 훈 1점, 구의 1점, 명정 1점, 돗자리 1점, 지요 1점, 머리카락뭉치 3점, 삽 4점이다. 재질은 무명, 모시, 삼베, 명주를 두루 사용하였으며 홑, 겹, 솜, 솜누비 옷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여흥이씨는 수의로 상의는 적삼, 누비저고리, 장저고리 2점을 착장하고 하의는 홑바지 2점, 누비 개당고 1점, 누비치마 1점, 솜치마 1점을 차례로 착장하였다. 특히 머리에는 가리마[加里亇]로 머리를 덮은 후 2갈래 땋은 머리를 가리마 위로 돌려 착장한 모습이었다. 가리마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머리쓰개의 한 종류로 이마에서부터 머리를 덮어 뒤로 드리워 착용하는 납작한 책갑 형태가 특징이다. 여흥이씨가 쓰고 있었던 가리마 유물은 아청색(鴉靑色) 기운이 남아 있는 직사각형 연화 문단에 종이를 배접하여 길이 반을 접어 시침하듯이 붙인 직사각 형태의 머리쓰개이다. 조선 후기의 가리마보다는 크기가 다소 작은 편이다. 바지 중에는 어깨끈이 달린 합당고도 있다. 이외에 수례지의로 사용된 양소매 탈착식 철릭, 액주름 등 남성용 복식이 있다.
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은 전체적으로 구성이씨와 비교하여 수량은 많으나 직물이 소박하고 복식의 종류도 적으며 묘주가 착장한 수의의 종류도 단순한 편이다.
여주 구성이씨와 여흥이씨의 묘는 무연고라는 한계점은 있으나, 발굴 기관, 복식 전공자, 병리학 연구자 등 전문가에 의해 유물 수습과 보존 처리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가치가 높다. 출토된 복식은 수백 년 동안 땅속에서 자연의 영향으로 퇴화되어 원래의 색상을 잃었지만 옷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양반가 중상층의 복식 제도와 상장속(喪葬俗)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