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정원용 의대(經山 鄭元容 衣帶)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착용한 19세기 후반의 복식과 그 부속품(일괄 62점)이다.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의 신분과 연대가 추정 가능하고 제복과 조복, 흑단령, 군복 등의 관복류와 평상복이 갖추어져 있어 한 시대의 복식제도를 파악할 수 있다. 조복과 제복, 중단, 동다리군복 등에서 편리성을 추구한 19세기 후기 복식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경산 정원용 의대(經山 鄭元容 衣帶)는 조선 후기 문신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착용한 19세기 후반의 복식과 부속품이다. 조복 상의인 적초의(赤綃衣) 3점, 중단(中單) 청삼(靑衫) 1점, 폐슬(蔽膝) 1점, 상(裳) 1점, 대대에 연결한 후수(後綬) 1점, 패옥(佩玉) 1점, 홀(笏) 2점, 제복(祭服) 의(衣) 1점, 흑단령(黑團領) 1점, 전복(戰服) 3점, 동다리 2점, 군복 요대(軍服 腰帶) 2점, 광다회(廣多繪) 1점, 서대(犀帶) 1점, 학정대(鶴頂帶) 1점, 술띠 4점, 장도(粧刀) 1점, 호패(戶牌) 7점 등 복식과 그 부속품을 포함하여 일괄 62점이다. 1968년 12월 12일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복 의(衣) 3점 중 1점은 겉과 안이 모두 홍색 순인(純仁)으로 만든 겹옷으로 가슴 부위에 폐흉(蔽胸)이 부착되어 있으며, 크기는 길이 95㎝, 화장 94㎝, 품 47㎝이다. 1점은 폐슬 없이 홍색 항라(亢羅)로 만든 홑옷으로, 길이 102㎝, 화장 102㎝, 품 46㎝이다. 나머지 1점은 폐슬 없이 홍색 순인 겉감에 홍색 노방으로 안을 댄 겹옷인데, 길이 94㎝, 화장 93㎝, 품 48㎝이다.
청삼 1점은 조복 안에 받침옷으로 입었던 중단인데 남색 은조사로 만들었다. 길이 118㎝, 화장 94㎝, 품 46㎝이다. 뒷중심선 아래에 22.7㎝ 정도의 뒷트임이 있다. 상을 연결할 수 있는 붉은 색의 암단추가 깃머리 끝에 하나, 등에 세 개가 달려 있다.
제복 의(衣) 1점은 흑색 은조사로 만든 홑옷으로 폐흉과 방심곡령(方心曲領)이 부착되어 있다. 길이 93㎝, 화장 102㎝, 소매너비 53㎝, 품 46㎝이다. 나머지 상(裳)과 후수(後綬), 패옥(佩玉), 홀 등은 조복과 제복에 공동으로 사용되었던 부속품이다. 상은 홍색 순인(純鱗)으로 만들었는데 길이가 75㎝이다. 후수는 홍색 공단으로 만들었는데 흑선을 두른 백색 대대에 연결되어 있다. 길이는 74㎝이며 청 · 황 · 청 · 백색 학 4쌍과 구름, 꽃들이 수놓아져 있고 금환 1쌍이 달려 있다. 패옥 1쌍은 번백옥(燔白玉)으로 만들었는데 청색의 운문사(雲紋紗) 주머니에 들어 있다. 홀 2점은 상아(象牙)로 되어 있다. 한 점은 길이 24㎝, 너비 5㎝로, 하단에는 청색 운문사 감이(甘伊)를 둘렀다. 다른 한 점은 길이 30.5㎝, 너비 4㎝로 상부가 약간 둥글며 청색 공단 감이를 둘렀다.
흑단령 1점은 소매가 넓은 단령으로, 북청색 운보문사 겉감에 남색 운보문사 안감으로 만들었고 흉배는 없다. 동다리 1점은 겹옷으로 금향색 길에 긴 홍수(紅袖)를 달고 남색 안을 받쳐 만들었다. 다른 1점은 홑으로 된 것으로 흑색 전복에 동다리 소매만 달아 두 벌 옷의 효과를 내었다. 홑과 겹으로 만든 전복 3점이 있는데, 홑전복 1점은 검정색이며 1점은 소색으로 만든 쾌자형 홑전복이다. 겹전복 1점은 겉은 검정색, 안은 붉은색으로 만들었다. 그밖에 녹색 우단과 청색 무명으로 만든 요대(腰帶)와 녹색 광다회, 자정(紫鞓) 서대(犀帶)와 자정 학정대(鶴頂帶) 등의 품대, 자색 · 금향색 · 백색 등으로 된 술띠 4점, 보상만초문이 있는 백동 장도, 상아 · 황양목 · 배나무 · 흑각으로 된 호패 7점이 있다.
경산 정원용 의대는 착용자의 신분과 연대가 추정 가능하고 제복과 조복, 흑단령, 군복 등의 관복류와 평상복이 갖추어져 있어 한 시대의 복식제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조복과 제복 의에 폐슬을 고정시킨 폐흉을 비롯하여 제복 상의의 깃에 방심곡령을 고정시킨 점, 중단인 청삼에 달아놓은 암단추 역시 상을 간단하게 연결하기 위해 만든 장치나 동다리와 전복을 하나의 옷으로 만든 동다리군복 등은 편리성을 추구한 19세기 후기 복식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원용의 서대는 61세 회갑, 75세 회혼례, 80세 회방연(回榜宴)에 사용한 삼회대(三回帶)로 알려져 있는다. 사람들이 이를 복대(福帶)라고 불렀으며 혼사를 치르는 자들이 앞다투어 빌려다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자정 서대가 삼회대인지는 알 수 없다. 7점의 호패 중에는 정계순(鄭啓淳), 정범조(鄭範朝), 정기세(鄭基世) 등 정원용 집안의 후손들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