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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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종 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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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 왕비의 법복(法服)이나, 문무백관의 조복과 제복의 좌우에 늘이어 차는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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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 · 왕비의 법복(法服)이나, 문무백관의 조복과 제복의 좌우에 늘이어 차는 옥.
내용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는 손수건, 묶었던 노끈을 푸는 도구, 장식품 등을 한 벌로 만들어 혁대에 달고 다니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 물건을 패라고 하였고, 이 패에 달린 옥을 패옥이라 하였다.

군신이 모두 패옥을 하고 이로써 존비를 헤아렸는데 전국시대에 이르러 패옥은 전기(戰器)가 아니라 하여 일시 폐지되었다가 부활되었다. ≪후한서 後漢書≫ 여복지(輿服志)에서 보면 효명황제 때 백옥으로 된 충아(衝牙)·쌍우황(雙瑀璜)을 가지고 대패(大佩)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 패옥은, 면복에 관한 규정이 고려시대에 이미 있었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및 ≪삼국유사≫에서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패옥은 면복의 부속물로 명나라로부터 면복이 사여될 때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명나라로부터 면복 수용이 단절된 이후 면복의 형태가 국속화(國俗化)되면서 패옥의 형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문무백관의 조복에 1∼3품은 번청옥(燔靑玉)을 차고, 4∼9품은 번백옥(燔白玉)을 찼으며, 제복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왕의 면복에는 백옥으로 패옥을 하고 패대(佩帶)를 늘어뜨렸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세종을 비롯하여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면복에는 ‘훈색장화패대(纁色粧花佩帶)’가 있었다. 이 면복은 영락예제(永樂禮制)의 친왕례를 따른 것이었다.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에서 보면 왕의 패옥은 위에 형(珩, 衡)이 겹쳐 있고, 가운데에는 거(琚)와 우(瑀)가 있으며, 밑에는 쌍황(雙璜)이 있다.

쌍황 사이에는 충아(衝牙)가 있으며, 또 충아와 쌍황 사이에 쌍적(雙滴)이 있는데, 모두 민옥(珉玉)으로 되었으며, 형 위에는 금구(金龜)가 달려 있다고 하였다. 한말 고종황제 12장복의 패옥은 옥패가 좌우에 하나씩 있었는데 옥패 하나에 옥형이 1개, 우가 1개, 거가 2개, 충아가 1개, 황이 2개 있었으며, 우 밑에는 옥화(玉花)가 있었다.

또 옥화 밑에는 또 옥적이 2개 달려 있어, 모두 운룡문을 새겨 묘금(描金)하였다. 그리고 옥형 밑에는 5줄의 조(組)를 늘여 옥주(玉珠)를 꿰었다. 그리하여 걸으면 충아와 두 옥적은 황과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내었다. 또한, 옥패 위에는 금구 2개가 있고 6채(采)의 소수(小綬) 2줄이 달려 있었다.

소수는 훈색 바탕에 황(黃)·백(白)·현(玄)·표(縹)·녹(綠)의 5색사로 짠 것이었다. 영친왕비의 패옥은 유일하게 현존하는 왕비의 패옥으로 총길이 72㎝, 너비 10㎝ 정도의 홍·백·남·흑·녹의 색동 견직물에 망수(網繡)를 맺고 수를 늘인 소수 위에 부착되어 있다. 망수의 좌우는 조직사(組織紗)로 감싸서 접어 실로 꿰맸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아 별도의 실로 꿰맨 느낌이 든다. 망수의 이면은 홍색 운문사이다. 맨 윗부분에 도금된 금속으로 된 고리가 부착되어 있어 띠에 걸게 되어 있다. 패옥은 백옥구슬로 여러 형태의 백옥장식을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상단에 있는 형은 너비 10㎝, 높이 5㎝이며, 여기에 구슬을 꿴 3개의 줄에 의하여 연결된 우는 너비 5.5㎝, 높이 5㎝ 정도이다.

그리고 그 밑에 연결된 거는 너비 6.7㎝, 높이 5.4㎝이다. 여기에 다시 충아와 2개의 황이 있고, 형에서 연결된 2개의 옥판에 옥화·옥적이 달려 있다. 이 옥적·황·충아 등이 서로 부딪쳐 걸을 때마다 소리를 낸다. 각 옥장식은 무늬가 없는 민옥이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연구(柳喜卿, 梨花女子大學校出版部, 1980)
『조선조말기왕실복식』(김영숙,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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