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이 편평하고 네모지다고 하여 방건·방관(方冠)·사방관(四方冠)·사방건(四方巾) 등으로 불렸다. 방건은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기에 선비들이나 문인, 유자(儒者)들이 사용했던 두건으로서 이것은 이미 옛날 남조(南朝)의 사대부들이 애호하여 사용했던 각건(角巾)의 제도에서 기인된 것이며, 사방평정건(四方平定巾)·사방각건(四方角巾)이라고 불렀다.
우리 나라에는 유학의 진흥과 함께 방건이 유학자들이나 선비들 사이에서 집안에 있을 때 맨상투 바람을 면하기 위해 편복포와 함께 사용되었다. 방건의 형태는 네모난 상자모양으로 사각(四角)이 편평하며 정수리부분이 막힌 형태와 터진 형태로 나뉘는데 전자는 사방관, 후자는 방건이라고 불리었다.
그 재료는 인모(人毛)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주와 통영 등지에서 생산되었고, 말총으로 엉성하게 그물처럼 얽어 꿰맨 것은 충주 등지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사방관은 조선 중기에는 사면이 각진 형태로서 위가 막히고 상부와 하부가 별차이 없이 정입방체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17, 18세기로 갈수록 위는 막혀 있으나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상광하협(上廣下狹)의 형태로서 약간의 변모를 보인다.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위가 터진 방건의 형태를 많이 착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