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 구별 없이 모두 다 백저포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저포는 빈부에 따라 옷감의 재질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고 왕도 평상시에는 평민과 다름없이 조건(皁巾 : 검은색 건)에 백저포를 입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복식과의 이중구조 속에서 왕공 귀족도 편복으로는 평민복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어 우리 고유의 복식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백저포는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포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다소 변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 고유의 두루마기형의 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백저포의 실제적인 형태를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다만 직령(直領)의 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동국대학교 박물관에는 문수사(文殊寺) 금동여래좌상 유물 포가 소장되어 있는데, 불상 조성 발원문에 명기된 것으로 충목왕 2년(1346)의 것임이 알려지고 있다.
현존하는 드문 고려 복식 유물 중 보존상태가 좋아 형태 파악이 가능한 이 포는 직령의 이중 깃에 반소매이며 포의 양옆에 맞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생저(生紵 : 생모시)로 된 반소매의 이 유물 포는 그동안 확실한 증거가 없었으므로 고려시대의 기본포인 백저포라고 계속 여겨왔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며 오히려 승려의 평상복인 단수편삼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