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삼 ()

앵삼
앵삼
의생활
물품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에서 착용한 황록색의 난삼.
이칭
이칭
난삼(襴衫)
물품
재질
용도
생진사 방방복
소장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작 시기
19세기
관련 의례
생진사 방방의
내용 요약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정의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에서 착용한 황록색의 난삼.
연원

앵삼(鶯衫)은 젊은 생 · 진사 입격자(入格者)가 착용한 황록색의 난삼(襴衫)이다. 난삼에서 비롯된 옷이지만 난삼보다 밝은색으로 제작한 젊은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을 말한다. 명나라에서는 1391년(홍무 24) 생원의 난삼을 옥색 포(布)와 견(絹)으로 만들었는데 소매가 넓고 검은색으로 가선을 둘렀다. 검은색 실띠[皂縧]를 두르고 늘어뜨린 띠[垂帶]가 있는 검은색 연건(軟巾)을 썼다. 조선에서는 1411년(태종 11), 명나라의 생원 복식제도를 받아들여 15세기 유생의 복식으로 난삼을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제학생도(諸學生徒) 중 유생은 학교에 있을 때 치포건(緇布巾)에 청금(靑衿)을 착용한다고 하였는데 청금이 곧 난삼이다.

형태와 제작방식

조선 전기의 난삼 형태는 『대명회전』 기록 외에 명대의 출토 난삼과 명나라 왕경(王琼)의 초상화, 『삼재도회(三才圖會)』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검은선을 두른 옥색 단령이다. 조선 후기의 난삼 형태는 윤봉구(尹鳳九, 1681~1767) 초상화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데, 현전하는 조선 후기의 유물은 옥색이 아니라 앵무새의 색상과 비슷해 보인다. 얇은 연두색 겉감에 노란 안감을 넣어 단령 모양으로 짓되, 깃과 수구, 좌우의 무(武) 가장자리와 밑단에 검은 선을 둘렀다.

『벽계영유록(碧鷄榮遊錄)』은 1825년(순조 25) 24세에 생원이 된 심동규(沈東圭, 1802~미상)가 출방(出榜), 창방(唱榜), 사은(謝恩), 알성(謁聖), 유가(遊街), 도문연(到門宴)에 이르는 제반 일정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방방 시에 필요한 물품과 복식을 기록해 두었다. 앵삼, 복두(幞頭), 영대(鈴帶), 목화(木靴) 등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중 앵삼은 송화색 수주[松花水紬] 안감에 초록색 숙초[草綠熟綃] 겉감으로 만들어 가장자리에 흑색 통견(通絹)으로 선을 두른 옷이었다.

관련 풍속

성해응(成海應 1769~1839)『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난삼에는 녹색이 많은데 어린 자는 황록색을 입는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19세기 전기에 나이에 따라 색상을 달리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는 생원에 입격한 것을 축하하는 시가 실려 있는데 “황앵삼이 가을 하늘에 비치니[黃鶯衫子映秋天] 이백 명 중에 가장 어리구나[二百人中最少年].”라고 하면서 세주(細註)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삼(黃衫)을 입는데 그것을 앵삼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어린 사람의 나이는 대략 20대를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1937년 『일용비람기(日用備覽記)』에서도 “소과 입격자는 연건(軟巾) · 영대(鈴帶)와 함께 난삼을 입는데 앵삼은 소년 진사가 착용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앵삼은 난삼의 일종으로, 젊은 생 · 진사 입격자가 착용하는 밝은 색상의 난삼임을 알 수 있다. 짙은 초록색 겉감에 황색 안감을 댄 스코틀랜드의 퍼스 박물관(Perth Museum) 소장 유물은 조선 후기에 나이 든 생진사 입격자의 청색 난삼이라고 할 수 있고,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어 만든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은 조선 후기 소년 생 · 진사 방방복으로 착용되었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윤봉구 초상화의 난삼 색상은 황록색이라고 보면 색상의 관행은 18세기 후기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하겠다.

기존 학계에서는 앵삼을 난삼과 동일한 옷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색상에 차이가 있으며 착용자의 나이에도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연건에 난삼을 입고 있는 생 · 진사 입격자 사진을 보면 실제 착용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천 및 현황

유생복은 중종대에 난삼에서 홍단령(紅團領)으로 변화되었고 다시 영조대에 도포(道袍)로 변화하였다. 17세기 중엽 현종대에 난삼 제도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권상하(權尙夏, 1641~1721), 민정중(閔鼎重, 1628~1692) 등이 청금과 복두를 생 · 진사의 신방(新榜)에 사용하기로 하고 북경에서 구입해 왔으나 현종의 승하로 중지되었다.

윤봉구는 현종 때에 민정중 등의 건의로 난삼을 입도록 하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영조에게 난삼 제도를 부활시키도록 청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영조는 안동향교에 있던 복두 · 난삼 · 대대(大帶)를 가져다 살펴보고 이듬해인 1747년부터 생 · 진사의 방방 복식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벽계영유록(碧鷄榮遊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소호당집(韶濩堂集)』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영조실록(英祖實錄)』
『인조실록(仁祖實錄)』
『일용비람기(日用備覽記)』
『조선부(朝鮮賦)』

단행본

국립제주박물관, 『한국의 馬 시공을 달리다』(국립제주박물관, 2014)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시권(試券)』(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논문

진덕순, 『조선 유생의 문과 급제와 복식문화 연구』(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진덕순·이은주, 「조선시대 생원 · 진사의 방방 복식제도」(『국학연구』 45, 한국국학진흥원, 202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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