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견섬유 또는 견직물 일반을 지칭하여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견에 대하여 한나라 때에 두 가지로 해석하였다. 『설문(設文)』에서는 “증여맥견색(繒如麥絹色)”이라고 하였으며 주(注)하여 견이 맥경(麥莖)이므로 맥경색의 증(繒), 곧 맥경색 비단을 말함이라 하였다.
『석명(釋名)』에서는 직목(織目)이 굵고 투박한 두꺼운 비단으로 기술하였다. 『삼국사기』의 신라복식금제의 허용 직물 가운데 견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견은 소문능시견포(小紋綾絁絹布)·혜라시견(繐羅絁絹) 등으로 기록되어 소문능·시·견·포 등으로, 곧 비단직물의 종별을 나타낸 것으로 보여 『석명』의 해석과 같은 견으로 본다.
고려시대에 사용된 견으로서는 견·대견(大絹)·중견(中絹)·소견(小絹)·색견(色絹)·홍견(紅絹)·청견(靑絹)·조견(皁絹)·백견(白絹)·금선견(金線絹)·비견(緋絹)·황견(黃絹)·필견(匹絹)·생견(生絹)·세견(細絹)·동견(東絹) 등이 있는데, 이들 견 가운데는 원나라·송나라·명나라에서 들어온 것도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세견은 과렴(科斂)된 것으로서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것인데, 중국지역에서는 주(紬)가 직목이 굵어 투박한 견직물이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세직물(細織物)로부터 투박한 것까지 각종이 있어, 그 가운데 특히 세주(細紬)로 제직된 것은 중국인에게까지 선호되어 다량의 교역품으로 나갔듯이, 견의 경우도 중국지역과는 달리 세직으로 제직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익재집(益齋集)』에는 동견이 찬양된 ”아유일필호동견중지불감금수단(我有一匹好東絹重之不減錦繡段)“이라는 기록이 있다. 곧, 우리의 동견이 금·수·단에 못지 않게 중요한 직물임을 기술한 것이다. 점세직을 선호한 우리민족이 중국과는 달리 명칭은 같으나 섬세하게 제직하여 그 특성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시대와 오늘날에는 견 또는 견포로서 견섬유 일반의 직물명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