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사에 의하여 직문된 것을 경금(經錦), 위사에 의하여 직문된 것을 위금(緯錦)이라고 한다. 경금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일찍이 제직되어 기원초에 우리나라로부터는 일본에, 중국으로부터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페르시아에 전하여져 세계금직문화발전에 공헌하였다.
위금은 페르시아에서 경금의 기술을 발전시켜 경금을 능가하는 화려한 금으로 제직된 것으로서, 그 제직기술이 동으로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전하여졌으며, 서로는 로마·이탈리아·프랑스와 기타 이슬람세계로 전파되었다. 금은 화려한 주자문직이 제직되기 전까지는 가장 화려한 직물이었다.
금에 대하여 『석명(釋名)』에서는 “금금야 작지용공중 기가여금……(錦金也 作之用功重 其價如金……)”, 즉 금은 제직하는 데 힘이 들어 그 값이 금과 같아서 ‘금(錦)’은 ‘금(金)’과 같이 귀하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부여(夫餘)인들이 외국에 나갈 때 금을 입었던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에서는 오색금(五色錦)·운포금(雲布錦)을 제직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특산금으로 백금(白錦)이 있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사용되었다.
신라에서는 대화어아금(大花魚牙錦)·소화어아금(小花魚牙錦)·조하금(朝霞錦)이 특산금으로 제직되어 당나라에 보내졌다. 또한, 일본에도 하금(霞錦)을 보낸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조하금과 같은 것이다. 백제에서는 왕이 청금고(靑錦袴)를 입고 금직인(錦織人)이 일본에 가서 금직제직기술을 전파하여 금직의 시조가 되었다.
신라시대에는 금전(錦典)·조하방(朝霞房) 등 금제직 공장(工匠)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액정원(掖庭院)의 금장(錦匠)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가례(嘉禮) 등 의례의 복식에 사용한 직금(織金)의 『직조발기(織造發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