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정의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
연원
변천 및 현황
1746년(영조 22) 영조는 경상북도 안동 향교에 있는 복두 · 난삼 · 대대(大帶)를 가져다 살펴보고 이듬해인 1747년부터 난삼을 생 · 진사의 방방 복식으로 착용하도록 하였다. 영조가 난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윤봉구(尹鳳九, 1683∼1767)가 있었다. 윤봉구는 현종 때에도 이미 민정중 등의 건의로 난삼을 입도록 하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난삼 제도를 부활시키도록 청하였다. 그러한 이유에서 윤봉구는 정자관에 난삼을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초상으로 남겼다. 윤봉구의 초상화는 현재 안동 권씨 화천군파 소장본과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박물관 소장본이 전해지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박물관 소장본은 1750년 변상벽(卞相璧, 생몰 미상)이 그렸다고 적혀 있다.
형태와 제작 방식
『벽계영유록(碧鷄榮遊錄)』은 1825년(순조 25) 24세에 생원이 된 심동규(沈東圭, 1802∼미상)가 출방(出榜), 창방(唱榜), 사은(謝恩), 알성(謁聖), 유가(遊街), 도문연(到門宴)에 이르는 제반 일정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방방 시 필요한 물품과 복식을 기록해 두었다. 방방 시에는 앵삼(鶯衫), 복두(幞頭), 영대(鈴帶), 목화(木靴) 등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중 앵삼은 초록숙초(草綠熟綃) 겉감에 송화수주(松花水紬) 안감을 넣어 만들었고 가장자리에 흑색 통견(通絹)으로 선을 둘렀다.
관련 풍속
1937년 『일용비람기(日用備覽記)』에서도 ‘소과 입격자는 연건(軟巾) · 영대와 함께 난삼을 입는데 앵삼은 소년 진사가 착용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앵삼은 난삼의 일종으로, 젊은 생 · 진사 입격자가 착용하는 밝은 색상의 난삼임을 알 수 있다. 짙은 초록색 겉감에 황색 안감을 댄 스코틀랜드의 Perth Museum 소장 유물은 조선 후기 나이든 생진사 입격자의 청색 난삼이라고 할 수 있고,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사 안감을 넣어 만든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은 조선 후기 소년 생진사 방방복으로 착용된 유물이다. 그러나 윤봉구 초상화의 난삼 색상은 황록색이라고 보면 색상의 관행은 19세기 후기에 형성되었다고 하겠다.
난삼에 사용한다는 복두는 실제 연건이었다. 난삼(襴衫)을 입고 머리에 복두(幞頭)를 쓴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명주실로 만든 연건(軟巾)을 썼다. 주자의 『가례(家禮)』에 복두를 쓰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난삼에는 복두를 쓰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복두와는 전혀 다른 연건을 썼다. 생진사 입격자의 난삼에는 영대라는 독특한 형태의 허리띠를 사용한다. 세조대 형태의 가는 끈에 망수로 싼 4개의 금칠을 한 나무 구슬을 꿰어 원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허리에 두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걸쳐 뒤로 잡아당긴 끈을 앞으로 당겨 양 어깨에 걸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착장법이다.
참고문헌
원전
- 『大明會典』
- 『林下筆記』
- 『碧鷄榮遊錄』
- 『三才圖會』
- 『韶濩堂集』
- 『硏經齋全集』
- 『日用備覽記』
- 『太學志』
단행본
- 中国織繡服飾全集編輯委員會, 『中國織繡服飾全集 4』(天津: 天津人民美術出版社, 2004)
- 杨新, 『明淸肖像画』(香港: 商务印书馆, 2008)
- 『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논문
- 진덕순·이은주, 「조선시대 생원⋅진사의 방방 복식제도」(『국학연구』 45, 한국국학진흥원, 2021)
인터넷 자료
-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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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日用備覽記』, 衣服具, “軟巾【進士人着】, 鈴帶【進士人着】, 也帶, 鸞衫 襴衫【小科人着】, 鸎杉【少年進士人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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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잡학에 속하는 여러 분야의 전문 지식을 배우던 학생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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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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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선비가 평상시에 쓰던, 검은 베로 만든 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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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유생들이 입던 청색 깃의 예복. 또는 그 옷에 달린 청색 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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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인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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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옷의 꾸밈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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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시대에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입던 의복. 옥색의 도포에 띠를 매고 건(巾)을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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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를 받을 때 쓰던 관(冠). 사모같이 두 단(段)으로 되어 있으며, 위가 모지고 뒤쪽의 좌우에 날개가 달려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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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의 성명을 써 붙여 발표하는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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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중국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 옛날 연나라의 도읍이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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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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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향교. 고려 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며, 조선 명종 22년(1567)에 성균관과 동일한 규모로 크게 중건되었다. 6ㆍ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에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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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를 받을 때 쓰던 관(冠). 사모같이 두 단(段)으로 되어 있으며, 위가 모지고 뒤쪽의 좌우에 날개가 달려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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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남자의 심의(深衣)나 여자의 원삼ㆍ활옷에 띠는 넓은 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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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방목(榜目)에 적힌 과거 급제자의 이름을 부름. 또는 그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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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예전에, 선비들이 평상시에 머리에 쓰던, 말총으로 만든 관(冠). 위는 터지고 산(山) 모양으로 된 층이 두 층 또는 세 층으로 되어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정자가 썼다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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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명나라 시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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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성사를 집행할 때에, 사제가 목에 걸쳐 무릎까지 늘어뜨리는 헝겊 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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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0
: 방목(榜目)에 적힌 과거 급제자의 이름을 부름. 또는 그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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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1
: 방목(榜目)에 적힌 과거 급제자의 이름을 부름. 또는 그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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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2
: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히 여겨 사례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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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3
: 임금이 성균관 문묘의 공자 신위에 참배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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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4
: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데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시가행진을 벌이고 시험관, 선배 급제자, 친척 등을 찾아보던 일. 보통 사흘에 걸쳐 행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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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5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 베풀던 잔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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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6
: 썩 설피고 얇은 비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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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7
: 시와 글을 모은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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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8
: 시험에 뽑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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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9
: ‘국자감시’를 달리 이르던 말. 국자감시에 합격한 사람을 진사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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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0
: 조선 시대에, 소과(小科) 가운데 ‘사서오경’을 시험 보던 과목.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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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1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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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2
: 소과(小科)에 급제한 사람이 백패(白牌)를 받을 때에 쓰던 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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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3
: 조복(朝服) 등 쪽에 있는 띠에 늘어뜨리던, 실로 엮은 넓은 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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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4
: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주석(註釋).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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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5
: 가느다란 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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