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골참(麻骨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문헌상으로는 우리나라 도로사에 있어서 신라아달라왕 3년(156) 처음으로 고갯길을 개척한 곳이다.
고구려의 온달(溫達)이 “계립현(鷄立峴)·죽령의 서쪽이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 고개를 지릅재·지름재·기름재·유티[油峙]·경티[經峙]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유티’는 기름재의, ‘경치’는 지름재의 의역(意譯)이다. 계립령 역시 지릅재의 한자표기 형태이며, 이 부근에 있는 계암(鷄巖)의 전설은 그 뒤에 생성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