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항하여 동맹관계를 유지하다가 신라가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의 영토인 한강유역을 점령하였다. 이것이 관산성전투의 직접적인 동기였다. 554년(신라 진흥왕 15) 백제는 일본에 원군을 청하고 대가야와 연합하여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김무력(金武力)·고간(高干) 등이 거느린 신라군에게 백제가 크게 패배하여 성왕(聖王)과 좌평 4인, 군졸 2만 9600여 명이 전사하였다. 이 싸움으로 나제동맹은 깨어졌고 양국이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적대관계가 계속되었으며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유하여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관산성의 위치는 백제 성왕사절지(聖王死節地)로 전해지는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 9-3번지 부근과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약 800m 떨어진 있는 환산성(環山城)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산성은 신라가 새로 점령한 한강하류와 본거지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