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산성은 고대 중요 교통로인 계립령을 지키는 성곽이다. 외부에서 경상북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고모산성을 통과하기에 경상북도 북부의 관문으로도 불린다. 산성은 신라가 축조하였다. 성 안에서는 5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기와와 청동기를 비롯하여 고려~조선시대에 걸치는 자기편 등도 확인되고 있어 폭 넓은 시기에 걸쳐 사용된 성곽임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임)로 해발 231m 고모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고모산성은 산지 끝자락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구릉을 감싼 형태로, 전체 둘레가 1,300m에 달하는 대형급 성곽이다. 면적은 110,326㎡이다.
성벽은 하천으로 인하여 형성된 자연 절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다. 성벽을 쌓는 방식은 경사면 상부를 삭토하고, 그 내측을 석재로 쌓아올렸다. 성벽 높이는 외벽이 1020m, 내벽이 510m 이상이다. 일부 무너져 내린 곳도 있으나 상당수는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성벽 축조에 사용한 성돌은 인근 산에서 채취한 할석을 이용하였다.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여 성벽 사이 틈이 적다. 석축 성벽의 축조 형태는 경사가 급한 산사면의 경우 주로 편축의 방식으로 성벽을 쌓았고, 계곡과 평지 구릉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석재를 쌓아올린 협축 방식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 축조에서 주목되는 것은 성벽의 하부 기초를 단단히 하고 동시에 방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보축 구조와 모서리 곡성시설이다. 이 두 구조물은 경주 명활산성을 비롯하여 5세기 축조된 보은 삼년산성에서 확인되고 있어 산성의 축조 주체와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성 안에서 확인되는 시설로는 문지와 성문을 오르는 등성시설 그리고 집수시설 등이 있다. 문지는 네 곳에서 확인되었으며, 그 가운데 남문과 서문이 발굴 조사되었다. 노출된 성문 구조는 신라 성곽에서 자주 확인되는 현문식으로, 주변에 성문을 오르기 위한 보조시설인 계단과 등성 시설도 확인되었다. 집수시설은 서문과 접한 계곡부 내측에서 확인되었다. 내부 발굴 조사에서는 저수지 2개소와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 2기가 확인되었다. 그 형태는 평면 사다리꼴과 방형의 형태로 구분된다. 특히 먼저 축조된 사다리꼴 형태의 저수지 내부에서는 가공된 목곽 시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부 결구가 된 채 확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저수시설은 우물과 같이 물을 보관하는 곳이자 우천 시 성벽으로 향하는 빗물 속도와 유압을 낮추어 성벽의 무너짐을 방어하는 기능도 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