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두현화상송고(雪竇顯和尙頌古)』는 줄여서 『설두송고(雪竇頌古)』라고도 통용되며 중국 송대의 운문종 승려인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공안(公案) 가운데서 100칙을 선별하여 송(頌)을 붙인 것으로 ‘송고백칙(頌古百則)’으로도 불린다. 현존본은 조선 세조 때의 을유자체 목활자로 찍은 것이며 현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설두중현이 설두산(雪竇山)에 주석하여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1022년경부터 저술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제자인 원진(遠塵)이 기록하여 간행하였다. 간행한 시기는 1050년으로 추정되며 이때가 그가 입적하기 2년 전이다. 관련 저술 중 널리 알려져 있는 『벽암록(碧巖錄)』은 『설두송고』에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225)이 착어(著語)와 평창(評唱)을 붙여서 간행한 것이다. 『설두송고』의 간행본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본은 1225년경에 간행된 중국 국가도서관 소장의 송대 판본이다.
『설두송고』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서도 간행된 횟수가 많지 않으며 그 판본 중 중국 원나라 때인 1342년(至正 2)에 절강성(浙江省)에서 사가록(四家錄)의 일부분으로 간행된 판본이 여말선초에 한반도로 전래되어 조선 세조 때에 교장(敎藏)류의 책들이 많이 간행될 때 을유자체(乙酉字體) 목활자로 찍은 것이다.
이 책의 권수제는 『설두현화상송고』이며 권말제는 ‘설두명각화상송고일백칙경(雪竇明覺和尙頌古一百則竟)’과 판심제는 ‘설두(雪竇)’이다. 서문은 제목이 ‘설두명각화상송고집서(雪竇明覺和尙頌古集序)’이며 서문의 말미에 제자 원진이 선록(繕錄)하고 담옥(曇玉)이 다시 뒤를 이어 서를 쓴다고 하고 그 시기는 1038년(戊寅)이라 하였고 별도의 행에 ‘至正壬午歲(1342, 고려 忠惠王 3년)重書’라 하였으므로 절강성에서 간행할 때 다시 서를 그대로 쓴 것을 나타낸다.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송고(頌古)의 형식은 비록 선종의 선전적류에서 언어 형식을 빌리는 것은 의리선에 불과하지만 당대(唐代) 조사선의 태동과 함께 선문답은 송대(宋代)에 이르러서 문자선(文字禪)이라는 영역으로 새롭게 전개되었다. 그 양상은 어록류, 사전류, 명(銘), 잠(箴), 가송(歌頌), 그리고 송고(頌古), 공안집(公案集)으로 발전하였다.
중현의 자는 은지(隱之)이고 속성은 이씨(李氏)인데 송 980년(太平興國 5년) 사천성 동천부 수녕현의 수주(遂州)에서 태어났다. 함평(咸平) 연간(9981003), 20대 전후에 중현은 부모님을 여의었고 998년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 인선(仁銑)의 문하에 출가하였다. 이후 촉(蜀, 사천)에 가서 선의 명장을 탐방하여 1006년 양주(襄州)의 온총(蘊聰, 9651031)의 문하에서 3년을 수행한 뒤 1008년 29세에 수주의 지문광조(智門光祚, ?~1031)를 찾아가서 수 차례의 문답을 통해 그의 법을 잇게 되었고 후에 그의 어록을 편찬하며 서문을 썼다.
1011년에는 려산에 가서 지주의 경덕사를 찾아가 증회(曾會)와 서로 알게 되었으며 증회는 1021년에 중현을 설두산에 영접하고 그의 생애를 대성시킨 사람이다. 1019년에는 문인 유개축이 어록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1021년 증회의 청에 의한 ‘폭천집’과 문인 문언이 ‘설두개당록’의 편집을 시작하였으며 이와 함께 ‘송고’의 제작도 시작되었다. 1031년 52세때 자신의 어록에 서문을 썼다. 1052년 73세로 입적한 뒤 『설두후록』이 편찬되었다. 이후 1108년의 기록에 당시 『雪竇七部集』의 간본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현의 저술들은 일찍이 문인들에 의해서 모아져서 그의 생전에 대부분 편집이 이루어졌다. 그의 입적 후 문인들은 저술을 입장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1108년 ‘조정사원(祖庭事苑) 8권’을 편찬할 때 이미 간본이 있었다고 한다. 중현의 대표적인 저작은 雪竇七部集으로 ① 동정어록(洞庭語錄), ② 설두개당록(雪竇開堂錄, 1026), ③ 설두후록(雪竇後錄), ④ 瀑泉集(1030), ⑤ 조영집(祖英集, 1032), ⑥ 염고집(拈古集, 1032), ⑦ 송고집(頌古集, 1038~) 등이다.
그 중 1026년 편찬된 『설두송고백칙』은 운문종의 제1세 문언(文偃, 864~949)의 법어에 관련된 18칙과 그 제자나 운문종 계열의 선사들 7칙이 수록되어 있어 북송 초기 절강지역에서 전개한 운문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책의 앞머리에는 참학소사(參學小師) 원진(遠塵)이 집(集)한 기록과 함께 권두에 서문에 다시 쓴 중서기(重書記)와 권말에 혜천복규[… 至正壬午春香山 惠川福珪序]의 중간사가록(重刊四家錄) 후서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중국 국가도서관에 소장된 1342년의 사가(四家)의 합간본은 간행자는 대명선사(大明禪寺) 주지인 해도(海島)와 조연자 중 한 사람으로 혜천복규가 기록되어 있다. 그가 바로 조선 간행본의 후서를 쓴 동일 인물이다. 반면 중국 국가도서관본의 『설두송고』에 후서를 쓰고 있는 사람은 혜종(慧從)이므로 중국 국가도서관본과 호림박물관본의 저본은 다른 계통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