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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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년에, 최적량이 국왕의 완쾌를 기원하기 위해 간행한 수진본 경전.
이칭
약칭
금강경(金剛經)
내용 요약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대승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경전으로, 『금강경』으로 줄여서 부른다. 이 경전은 2세기 무렵 인도에서 반야운동이 확산되어 이를 계기로 지혜의 사상을 결집하여 이루어진 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널리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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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042년에, 최적량이 국왕의 완쾌를 기원하기 위해 간행한 수진본 경전.
내용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대승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경전으로, 보통 『금강경』이라 줄여서 부른다. 이 경전은 2세기 무렵 인도에서 반야운동이 확산되어 이를 계기로 지혜의 사상을 결집하여 이루어진 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널리 전파하였다. 금강경은 매일 수지독송(受持讀誦)하게 되면 누구나 동일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를 수행하는 의식이 강조되었던 까닭에 대중들로부터 널리 독송되었다.

이 책은 범어로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a-parajnaparamita-sutra)’이며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 중 제9회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의 별역(別譯)으로 부처님과 제자 수보리[須菩提]의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경전은 중국에 전래되어 402년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漢譯)으로부터 시작하여 703년에 의정(義淨)의 역출(譯出)에 이르기까지 300년 동안 6종의 번역본이 유통되었다. 이 중 구마라습 번역본이 가장 널리 유통되었다. 중국에서 한역 금강경이 유포된 이후 양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32과분(科分)으로 분장(分章)하였고, 당나라 육조 혜능(慧能) 등에 의해 주해가 끊이지 않고 찬술되었다. 선종에서는 육조 혜능(慧能)이 이 경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가장 중요시한다.

이 책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에 전래되어 금판경 등 여러 매체로 유형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중 목판본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은 1042년에 임피현(지금의 전북 군산, 옥구군 임피면 지역)의 현령(縣令)이었던 최적량(崔積良)이 간행한 것이다. 권말의 발문 내용에 의하면 최적량이 당시의 국왕인 정종(靖宗)이 지난해(1041년) 4월부터 발병하여 수개월 동안 고생이 심하므로 왕이 완쾌하여 국가를 다시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낫게 해드리고자 정성을 다하여 금강경 1천부 간행하고 배포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임피현(臨陂縣)은 신라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임피군(臨陂郡)으로 불리다가 고려에 들어서는 현(縣)으로 강등되어 현령관을 두어 회미, 옥구, 만경, 부윤을 다스리던 곳이었다.

이 책은 14.4×7.7cm의 절첩(折帖) 형태의 수진본(袖珍本)으로 상하의 변란이 있고 한 장의 폭은 48.3cm이다. 한 장은 6면과 각 면당 4행 10자가 배열되어 있다. 현존본은 책의 전체가 아니라 권말 부분인 제24장부터 끝까지 4장이 남아 있고 권말에는 발문과 간기사항이 남아 있다. 책의 장차가 표시된 연결 부분에는 ‘금강경 제24장(金剛經第卄四張)’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전체적인 서체는 힘이 있는 구양순체로 대단히 정제되어 있다. 다른 판본에서 볼 수 없거나 표기가 다른 기록으로 권말의 진언에서는 ① 금강반야무진장다라니(金剛般若無盡藏陀羅尼, 亦名般若心 亦名般若眼 若誦一徧如誦十二部經一千徧), ② 금강경대신진언(金剛經大身眞言), ③ 금강경신진언(金剛經身眞言), ④ 금강경수신진언(金剛經隨心眞言), ⑤ 금강경심중심진언(金剛經心中心眞言), ⑥ 보루각다라니(寶樓閣陀羅尼), ⑦ 보궐진언(補闕眞言)의 7종 진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에 있어서 이 책은 전체가 없어 전말의 비교는 어렵지만 여러 번역 중에서 401~412년에 이루어진 구마라습 번역본으로 추정되고 고려대장경의 내용과 비교할 때 대장경에는 없는 마지막 제32분에 해당하는 ‘응화비진분 제32(應化非眞分第三十二)’라는 소제목이 있다. 그밖에 다른 부분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 자료는 현존의 고려시대 목판 인쇄물 중 1007년에 간행된 『보협인다라니경[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篋印陀羅尼經]』에 이은 국가적인 초조대장경(1011~1029) 간행 사업을 제외하고는 11세기 자료 중 이른 시기에 간행된 것이다. 정종(靖宗) 8년(1042) 당시에 1천 부를 찍었다는 사실을 통해 비록 경전 한 권의 분량이 많은 것은 아니나 지방에서 간행된 것으로는 규모 있는 판각 사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남권희, 『高麗時代 記錄文化硏究』(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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