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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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불교
문헌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교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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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교경전.
내용

대승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경전. 줄여서 『금강경』이라고 함.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 중 제9회 『능단금강분(能斷金剛分)』의 별역(別譯)으로 부처님과 제자 수보리(須菩提)의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다. 선종에서는 육조 혜능(慧能)이 이 경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가장 중요시한다.

이 경의 한역은 모두 6종이 있으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이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한 각종 논소가 1백여 종에 이른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판본은 아래와 같다.

(1)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81-1년 지정)

목판본. 1첩. 서울 조병순 소장. 1363년 전라남도 남원에서 지남원부사 설사덕(薛師德)과 판관 김영기(金英起)의 주관 아래 신지(信之)가 글씨를 쓰고 법계(法戒)가 그림을 그렸으며, 신명(信明)과 법공(法空)이 새겼다. 아랫단에 본문, 윗단에 변상도(變相圖)를 새겨 찍어 낸 것이다.

책머리의 진언 · 계청보살문(啓請菩薩文) 등 문장 약간이 결락되었으나, 발원문에 이어 『금강경』의 본문이 제1법회인유분(第一法會因由分)부터 제32응화비진분(第三十二應化非眞分)까지 완전하게 수록되고 있으며, 변상도는 설법전도(說法全圖)를 비롯하여 각 분의 주요주제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린 것이 판각되어 있다.

그리고 권말에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 새겨져 장엄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지방관판이므로 판각이 정교하지 못하고 인쇄가 깨끗하지 못한 편이나 보기 드문 『금강경』 판화본이다.

(2)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81년 지정)

1책. 목판본.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이 판본은 요진(姚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한 『금강경』 본문에 당나라 혜능(慧能)의 구결(口訣)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권수에 금강경계청(金剛經啓請) · 청사보살(請四菩薩) · 발원문(發願文)이 있고, 이어 금강경의 본문 및 쌍항의 협주, 그 끝에 반야진언(般若眞言) · 금강심진언(金剛心眞言) · 보궐진언(補闕言) · 영험찬(靈驗讚)이 있다.

판본의 체재는 계선(界線)과 판심(版心)이 없는 권자본 형식이며, 전후엽에 걸친 전지(全紙)에 15항 16자, 주 쌍항이 새겨져 있다. 글자체와 판각의 솜씨로 보아 원판본계의 번각이며, 글자에 나무결이 생겨 인쇄가 깨끗하지 못하고, 특히 끝부분에 마멸이 심한 편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판본은 14세기 전기에 새겨진 판에서 조선 초기에 후쇄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권말에 1387년(우왕 13) 이색(李穡)이 쓴 발문이 있는데, 본문과 판식은 물론 글자체도 전혀 다르다. 이는 『천로금강경 川老金剛經』에 대하여 이색이 글을 짓고 각지(角之)가 필사하여 지담(志淡)이 새긴 것이며, 아마도 판목에서 찍어낸 이가 잘못 붙였거나 전에 소장한 사람, 또는 판 사람이 이 판본의 간기(刊記)를 잃어 의도적으로 대신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지정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천로금강경』의 판본이 새로 나타남으로 인하여 규명되었다. 이 판본은 『금강경오가해』에서 혜능의 주 가운데에서 긴요한 것만을 뽑아 붙인 것으로 금강경판본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3) 금강경삼가해 권1, 5(보물, 1984년 지정) · 금강경삼가해 권2, 3, 4, 5(보물, 2002년 지정)

5권 5책. 활자본.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인 『금강경오가해』 중 당나라 종밀(宗密)과 종경(宗鏡), 그리고 조선 초기의 고승인 기화(己和) 등 3인의 주석을 뽑아서 정문(正文) 다음에 수록한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에 구결(口訣)을 붙이고 국역한 것이다.

권말의 한계희(韓繼禧)와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에 의하면 세종의 명을 받아 문종과 세조가 국역하였다. 미처 교정을 마치지 못한 것을 자성대비(慈聖大妃: 세조의 비)가 학조(學祖)에게 명하여 다시 교정하게 하고, 1482년(성종 13)에 정문대자는 정축자, 중 · 소자는 을해자를 사용하여 3백 부 찍어낸 것이다. 이 책은 세종 · 문종 · 세조 및 세조비, 성종에 의하여 35년 만에 완성된 것으로, 조선 초기 왕실의 계승사업으로 이루어진 점과 함께 한글의 표기형식이 혼용되어 있어 한글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금강경삼가해』 국역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권2∼5(보물, 2002년 지정)의 낙질본과 성암문고(誠庵文庫) 소장 권3·4의 복본, 그리고 동국대학교 소장 권1 낙장본이 알려져 왔으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권1(보물, 1984년 지정)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완질을 갖추게 되었다.

이 가운데 2002년 보물로 지정된 4권 4책은 권수제 밑에 ‘관음(觀音)’이라는 글자와 권3의 표지에 ‘속리산관음사유진(俗離山觀音寺留鎭)’ 등의 묵서(墨書)가 있어 속리산 관음사에 있었던 책임을 알 수 있다.

동국대학교 소장본에는 기화의 서문이 남아 있다. 1981년 영남대학교출판부에서 서울대학교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에 동국대학교 소장 권1의 서문을 합쳐서 『금강경삼가해』라는 제목으로 영인하였다. <千惠鳳>

(4)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86년 지정)

1축. 목판본.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1357년(공민왕 6) 전주에 살던 김저(金貯)가 덕운사(德雲寺)의 지선(志禪)과 조환(祖桓)에게 부탁하여 간행하게 하였는데, 이 때 성주(省珠) · 법굉(法宏) 등이 각수(刻手)로 참여하였다.

이 판본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역한 경문에 당나라 혜능(慧能)이 주석(註釋)을 붙인 것으로 책머리에 변상도가 있으며, 이어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 발원문(發願文) · 운하범(云何梵)과 경문이 실려 있다.

경문에 이어서 보궐진언(補闕眞言) · 사구게(四句偈) · 반야심경(般若心經) · 소재묘길상신주(消災妙吉祥神呪) · 묘법연화경심(妙法蓮華經心) · 설삼승법게(說三乘法偈) · 사제법(四諦法) ·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 육바라밀법(六波羅蜜法) · 대승경전(大乘經典) · 삼귀의계(三歸依戒) · 삼매야계(三昧耶戒) · 사대원(四大願) · 대자보살회향게(大慈菩薩回向偈)와 끝에 간행기록이 있다.

자체(字體)는 송설체(松雪體)이며, 『금강경』 경문과 진언 · 발원문 등은 대자(大字)로, 반야심경 등은 중간자[中字]로, 주석 및 해의는 작은자[小字]로 써서 새겼다. 권자본(卷子本)의 판식(板式)으로 간행된 것을 선장(線裝)으로 했다가 다시 해책하여 각 장(張)을 이어붙여 권자본으로 하였으나, 권축(卷軸)과 표죽(裱竹)이 없다. 고려시대 불교경전 가운데 특이한 형식의 판본이며, 특히 신앙의례용으로 편집된 『금강경』으로, 그 유례가 없는 것이다.

(5)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88년 지정)

1권 1책. 목판본. 서울이양재(李亮載) 소장. 1387년(우왕 13) 유구(柳玽) · 강인부(姜仁富) 등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송나라 천로(川老)의 해석을 붙인 ‘천로금강경’으로 알려진 책이다. 범망경 및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87년 지정)과 동일한 판본이다.

(6)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1991년 지정)

2권 1책. 목판본. 서울송성문(宋成文) 소장. 1415년(태종 15)에 간행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이다. 육조대사 이후 선종(禪宗)의 소의경전(所衣經典)으로 유통되어 오면서 많은 연구주석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양나라 부대사(傅大師), 당나라의 혜능(慧能)과 종밀(宗密), 송나라의 천로(川老)와 종경(宗鏡) 등 다섯 대가(大家)의 주석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 이 『금강경오가해』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오가해』는 기화(己和)의 설의(說誼)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설의가 없고 권말에 결의(決疑)만 붙어 있을 뿐이다. 이로 보아 기화의 설의는 이 책이 간행된 뒤에 저술된 것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이 판본은 안엄사(安嚴寺) 주지로 있던 성거(省琚)가 필사한 것을 해혜(海惠)와 조구(祖玽)가 화주하여 간행된 것이다.

참고문헌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91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2)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88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89)
『국보』12-서예·전적-(천혜봉 편, 예경산업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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