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선에서 조(祖)는 시조(始祖)이고, 사(師)는 사범(師範)의 의미이다. 일종(一宗) 내지 일파(一派)를 처음으로 열었다는 의미로 활용하는데, 또한 부처님의 깨달음인 주1을 전승한 역대의 조상이라는 의미로도 활용한다. 특히 중국의 선종에서는 보리달마(菩提達磨ㅡ, 주2를 조사의 연원으로 말하기도 한다. 조사를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조사선은 보리달마로부터 연원하는 중국 선종의 가풍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달마가 정전(正傳)한 선풍의 의미이다.
한편 주3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한 조계혜능(曹溪慧能, 주4 이하 남종선법을 지칭하기도 한다. 주5 보리달마장에서는 조사의 의미에 대하여 “해(解)와 행(行)이 상응하는 사람을 조(祖)라고 말한다.”고 하여 조사의 의미에 대하여 깨달음[解]과 그 교화 및 실천[行]이 모두 갖추어진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의하였다. 규봉종밀(圭峯宗密, 주6은 오종선(五種禪) 가운데 최상승선(最上乘禪)은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 일행삼매(一行三昧) · 진여삼매(眞如三昧)라고 하여 달마가 전승한 조사선법으로 간주하였다. 조사선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이 사제인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의 게송에 대하여 “ 여래선은 사제가 이해했지만, 조사선은 아직 꿈에도 보지 못했다.”[『위산영우어록』(『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47, 580쪽 중하)]고 평가한 말에서 처음 보인다. 조사선의 전통에서는 선을 수행하는 주7 자신의 깨달음의 체험이 경론이나 문자를 초월하는 격외의 도리로 간주되어, 그것이 조사와 조사 내지 선지식과 납자가 심인에 의해 전승되었다. 선사의 상당설법 · 선문답 · 방할(棒喝)과 같은 행위가 공안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중반부터 10세기 중반에 걸쳐 나말여초에 독자적으로 형성된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수미산문을 제외한 여덟 산문의 선풍이 바로 조사선이었다. 조사선은 교화의 방식에서 여래선(如來禪)과 상대적인 의미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령 조사인 진귀(眞歸)가 여래를 상징하는 석존의 스승이라는 주8은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교화방식에서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출현한 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우월하다는 전통으로 점철되었다. 가령 고려 후기 진정천책(眞靜天頙, 1206?)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을 비롯하여 조선 중기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선교석(禪敎釋)』 및 『선교결(禪敎訣)』, 그리고 조선 후기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선문수경(禪文手鏡)』에서 의리선(義理禪) · 여래선(如來禪) · 조사선(祖師禪)의 삼종선으로 구분하여 조사선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