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9년 11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각계각층에서 추진 또는 개최하였던 다양한 추도회.
역사적 배경
경과
한성부민회 주최로 각 단체와 인물들이 연합하여 추진한 ‘국민대추도회’도 계획되었다. 한성부민회의 발기로 11월 26일 오후 1시 한성부민회관에서 전국민 추도회를 개최하며, 특히 13도와 각 항구 대표자에게 알리고 준비위원으로 100명을 선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추도회는 정부 주도의 관민추도회와는 달리 한말의 대표적인 자치단체인 한성부민회가 주도하고, 대한협회·일진회의 협력과 기타 대표적인 사회단체들의 인물이 모두 망라되어 추진된 행사였다. 그러나 국민대추도회는 각 단체 간의 이해가 엇갈려 실행되지 못했다.
관민추도회와 국민대추도회 외에도 일진회가 주도한 ‘신녕군추도회(新寧郡追悼會)’ ‘한자신문사추도회(漢字新聞社追悼會)’ 등이 있었고, 이완용 계열의 추도회로 볼 수 있는 ‘한자통일회추도회(漢字統一會追悼會)’도 있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이등박문추도회 개최 전후 사회세력의 동향과 친일 정치세력의 형성」(이용창, 『사학연구』 69, 한국사학회, 2003)
- 「한말 자강운동론의 각 계열과 그 성격」(박찬승, 『한국사연구』 68, 한국사연구회, 199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